김은상 <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진을 보이기 시작한 수출은 연 3.7% 증가에 그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안타깝게 전년동기에 비해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전년대비 절반가까이 줄어든 반도체의 수출부진이 직접적인 원인이긴
하나 반도체를 제외한 여타 품목의 수출도 감소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간 심각한 현상이 아닐수 없다.

연초 파업으로 빚은 자동차 등의 수출차질액에 더하여 바이어의 방한
취소, 수입선 전환 등 바이어 이탈사태로 야기된 상당액의 기회수출상실
분도 수출부진의 원인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95년 현재 각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수출 상품은 1백36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2년전에 비하면 약 10%가 줄어든 것이며 수출이 분진했던
작년도에도 계속 줄어들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수출품목 위치에서 "Made in Korea"가 매년 수십개씩
사라져 가고 있는 현상은 실로 가슴아프고 걱정되는 일이 아닐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 수출상품의 경쟁력이 하락함으로써 후발개도국의
부상이나 선진국의 시장재탈환 노력에 밀리고 있는데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상당수의 우리 수출업체가 국내에서 버티지 못하고 해외로 이전한 것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한동안 세계 1위 품목이었던 피아노마저도 일부가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여 중국산으로 미국시장에 소개되고 있으며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7억5천만달러의 혁제의류중 80%가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업체에
의해 제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자는 미국의 몇몇 바이어로부터 "한국은 세계적 일류상품들의 생산
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나서 미국에 무슨 물건을 팔려고 하느냐"라는
충고어린 질문에 접하고 내심 당혹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우리가 지난 30여년간 피땀흘려 노력한 결과 세계 최고의 위치를 확보한
대표수출 상품들이 하루아침에 다른나라 산으로 둔갑하여 그들의 수출
산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필자는 바이어들어 떠난
후에도 한참동안 좌절과 허탈의 충격으로 괴로워해야했다.

이번에 KOTRA 가 중소기업중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수출현장설명회
및 구매상담회에 참가하는 해외 바이어를 유치하는 과정에서도 무역관
직원들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커다란 애로를 겪어야 했다고 실토하고
있다.

한국상품의 품질이 중국이나 대만산에 비해 좋기는 하지만 품질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다는 불평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납기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느냐, 장기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과 함께 방한을 꺼리는 바이어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가격문제는 생산성 향상과 코스트 절감 및 마케팅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지만 납기나 안정적 공급과 같은 계약이행상의 문제는 바로 신뢰의
문제로서 모든 거래에서 신뢰의 상실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에서 바이어들의 반응의 심각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 수출현장설명회 및 구매상담회에 참가하는 바이어는 45개국의
6백명에 이르고 있다.

상담일정이 단 이틀간인데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우리 상품의 경쟁력
하락 상황을 고려할 때 값지게 활용해야 할 절호의 상담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들 바이어들이 단 한명이라도 성과없이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1만건이 넘는 철저한 개인별 상담스케줄이 마련되고 있는바 이번에
상담에 임하는 우리 업체들도 최선을 다해 줄것이 요망되고 있다.

우리 수출의 가능성은 아직 얼마든지 있다.

앞서 언급한 시장점유율 1위 품목을 보더라도 숫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자동차 엘리베이터 전자제품 등 중화학 제품 뿐만 아니라 낚시대 앨범
양말 등 경공업 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군을 망라하고 있다.

특히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상당수의 경공업 제품이
첨단소재와 기술을 활용하여 세련되 디자인과 함게 고급화됨으로써 시장
재탈환에 성공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우리 수출부진은 전환기의 시련으로서 우리 업계도 이 시련을
DVD, 인공위성수신기(SVR), LCD, 캠코더, CDMA 등의 신상품 개발가 기존
상품의 고급화로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징후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적응노력과 함게 브랜드 및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 현지유통의
참여와 마케팅의 고도화,A/S체제의 확립 등의 과제를 착실하게 추진한다면
우리 수출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본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우리는 88년 올림픽 개최 이후 3년간의 극심한 경제침체와 2.8% 증가에
그치는 수출부진을 경험한 바 있는데 지난해 OECD 가입과 함께 다시
어려움을 겪는 징크스를 경험하고 있다.

88년 올림픽 개최이후의 수출부진을 우리가 슬기롭게 극복했듯이
OECD가입 이후 작금의 수출부진과 경기후퇴도 구조조정과 우리 상품의
"세대교체"라는 전환기적 과정에서 오는 시련으로서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번에 개최되는 수출현장설명회 및 구매상담회가 3월부터는 우리 수출이
증가세로 반전하는 전환점이 되도록 하는 계기가 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