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0초동안 4번이나 규칙을 위반한 혐의로 6벌타를 먹은 "규칙
관련 별일"이다.

<>볼이 구르기 시작했다.

루 그레엄이란 프로가 1970년 미뉴욕주 웨스트체스터CC에서의 웨스트
체스터클래식 2라운드 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12번홀에서 그의 세컨드샷은 크게 훅이 나며 언덕을 향해 날랐다.

가서 보니 볼은 경사면에 멈춰 있었고 그 볼 옆으로는 TV중계용 케이블이
가로 놓여 있었다.

당연히 그레엄은 그 케이블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 과정에서 볼은 움직이지 않았으니 만사 OK.

그레엄은 다음 샷을 분석키위해 그린쪽으로 걸어 갔다.

그런데 갑자기 갤러리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볼 보세요. 볼"

그레엄은 처음 자신에게 볼이 날라오는 줄 알고 두손으로 머리를 감쌌으나
실은 그게 아니었다.

사건은 경사면에 멈춰있던 그레엄의 볼이 밑으로 구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밑으로 굴러 내려오던 볼은 마침 언덕 밑에 놓여 있던 그레엄의 캐디백에
맞았다.

그레엄의 캐디가 무심코 백을 놔 둔 것인데 사실 캐디역시 볼이 굴러
내려올지 어떻게 예상했겠는가.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볼은 백을 맞힌 후 멈췄는데 그레엄의 캐디는 볼이 자기 바로 앞에
멈추자 본능적으로 그 볼을 주워 올렸다.

그리고는 그 볼을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그레엄에게
던졌다.

<>6벌타인가, 8벌타인가

그레엄은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음"을 느꼈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

자신은 볼 근처에도 없었고 볼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벌타를 먹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몇타를 먹어야 하는지 감이
안잡혔다.

동반선수에게 물었으나 그도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레엄은 경기위원을 불렀다.

조지 월시라는 경기위원은 근엄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들었다.

주위의 갤러리들은 월시에게 외쳐댔다.

"그레엄은 잘못이 없어요. 그에게 벌타를 먹이면 안됩니다"

월시는 "조용히 좀 해요"하고 관중들에게 일갈한 뒤 큰 소리로 외쳤다.

"멈춰있던 볼이 굴렀으니까 2벌타, 백에 맞았으니까 2벌타, 또 캐디가
볼을 집었으니까 2벌타, 그리고 그레엄도 던진 볼을 받았으니까 2벌타.
합계 8벌타!"

그레엄은 까무러칠만 했다.

"아니 어떻게 그럴수가. 이건 말도 안돼"

그레엄이 워낙 세차게 항의하자 월시도 풀이 죽었다.

"음. 캐디나 자네나 같은 편이니 볼을 줏은건 2벌타만 해야겠군.
합계 6벌타로 하지. 이거 6벌타인지 8벌타인지 4벌타인지 정말 헷갈리는군"

월시는 "우선 6벌타로 계산한후 경기를 계속 할 것"을 명했다.

당시는 골프장에서 워키토키를 사용하지 않았던 시절.

월시는 경기본부에 가서 자문을 구한후 스코어카드를 제출할때 최종
판정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때는 늦었다.

일단 6벌타로 계산한 그레엄은 그 벌타를 상쇄하려 필사적으로 남은
6홀을 돌았다.

그러나 스코어링 텐트에는 월시가 보이지 않았다.

그레엄은 동반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30분정도나 기다렸으나 월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결국 6벌타 계산,그대로 카드를 제출했고 결과적으로 1타차로
커트오프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그레엄이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 입는데 월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벌써 카드를 낸거야. 에그 좀 더 기다려야지. 자넨 4벌타가 맞아"

아, 이런 엿같은 경우가 있나.

4벌타면 너끈히 커트오프를 통과, 하다못해 호텔비라도 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레엄은 그 경기위원이 "너무 너무" 미웠다.

- 그레엄의 볼이 움직인 것은 자연현상이니 벌타가 없다.

그의 백에 맞은 것 2벌타와 캐디가 볼을 주운 것 2벌타 등 4벌타면
땡.

< 김흥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