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12월 23일 북해 한가운데 위치한 노르웨이의 시추선 "오션 바이킹".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시추선상의 근로자들은 침통하기만 했다.

바다밑에 거대한 유전이 있다는 희망으로 지난 3년여간 시추작업에
몰두했지만 결과는 실망뿐이었다.

그때 근로자들의 콧속으로 느끼한 기름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원유냄새였다.

노르웨이 최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가난한 북유럽의 소국 노르웨이는 그때부터 번영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노르웨이는 세계 2위의 석유수출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6,000달러를 넘고 실업률도 5%를 밑돌고
있다.

풍부한 석유와 가스를 땔감으로 노르웨이 경제는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석유.가스가 노르웨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6%.수출액 기준으로는
34%에 해당하는 액수다.

덕분에 노르웨이 정부재정은 오는 99년에 가면 총 40억달러의 재정흑자를
누릴 수 있게 될것으로 재무부는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부가 순전히 석유와 가스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해양관련 산업에서 세계최고의 기술국가가 된다는 목표아래 노르웨이
민.관은 연구개발(R&D)에 심혈을 기울였다.

덕분에 노르웨이 석유산업 관련 서비스및 장비공급 시장 규모는
연간 7억~8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물론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80년대말까지만 하더라도 노르웨이에는 "생산비용 세계 최고의 나라"라는
오명이 붙어있었다.

높은 세금, 비싼 임금, 폐쇄적인 시장정책..경쟁력을 끌어내리는 요인
투성이였다.

여기에 80년대말 불어닥친 유가급락의 소용돌이는 노르웨이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90년대초에는 베트남 러시아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하면서 노르웨이 연안 북해에서 원유시추 작업을 벌이던 외국
유수 석유회사들은 새로운 시장을 향해 "북해 엑소더스"에 들어갔다.

코스트 다운을 불가피하게 만든데는 노르웨이의 내적 요인도 있었다.

석유와 가스개발이 진행되면서 석유시추는 앞으로 더 바다 깊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시추및 생산비용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노르웨이 산업계를 깨운 자극제는 "에너지는 유한하다"는
명제였다.

93년, 드디어 노르웨이가 야심찬 코스트 절감운동을 시작했다.

이른바 "NORSOK".

당시 산업.에너지부 장관인 핀 크리스텐센이 산업계 전반을 망라해
구성한 일종의 포럼이었다.

"앞으로 5년안에 석유산업의 원가를 절반으로 줄여라-".

NORSOK의 목표였다.

이 목표의 핵심전략은 표준화와 간소화.

석유 관련시설및 장비의 시방서를 표준화하고 더욱 간소화함으로써
필요없는 낭비를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절감 캠페인은 대성공이었다.

지난 92년 발견된 유전 노른이 대표적인 예다.

노른은 80년대 중반이후 발견된 최대 유전.

NORSOK의 성과를 보여줄 첫 수확처였다.

이 유전지대의 개발업체 스타트오일은 당초 이 유전의 개발비용이
16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었다.

그러나 NORSOK 실시 이후 이 비용은 12억5,000만달러로 낮아졌다.

노르웨이 산업 전략의 또하나의 기둥은 국제화.

인구 400만의 작은 나라인 노르웨이로서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는
경제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노르웨이의 최대 시장은 유럽.

수출품의 80%가 이웃 유럽으로 향한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수출 포커스는 유럽이 아니다.

바로 아시아다.

노르웨이의 수출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6% 남짓.

아직은 미미하다.

그러나 잠재력은 막대하다.

유럽이 노년기에 접어들었다면 아시아는 본격적인 성장기를 앞둔
앞길창창한 시장이다.

그래서 시작한게 소위 "아시아 전략"이다.

지난 93년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합작품이다.

석유및 가스, 수력발전, 정보통신, 어업,환경공학, 선박등 6개 분야에서
아시아.노르웨이간 산업협력을 집중 육성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략의 특징은 정.재계의 긴밀한 협조다.

아시아 각국과의 정치적 차원의 상호방문도 반드시 산업계와의 긴밀한
논의이후에 결정될 정도다.

스타트오일, 히드로, 사가피트롤리엄등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기업들은
이런 정부의 후원에 힘입어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제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르웨이 석유거인들을 따라 설비및 엔지니어링 업체들도 "해외행"
여행길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산업공동화 현상이 심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공장을 해외로 옮겨가지만 본사는 노르웨이에 남아있다.

두뇌가 노르웨이에 있는한 산업공동화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그레테
크누드센 외무부 통상장관)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선박업체 크베르너는 최근 본사 자체를 영국
런던으로 옮겨버렸다.

선박관련 금융여건이나 유럽 각국과의 연계등으로 볼때 노르웨이보다는
영국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노르웨이 정부는 대기업이 통째로 빠져나가는데도 초연하다.

"정부는 기업활동을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노르웨이 기업들은 어디서든 좋은 사업환경을 찾아 이동할 자유가
있다"(레이프 니가르트 외무부 조선국장)는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노르웨이는 유럽연합(EU)회원국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이라는 화려한 EU 멤버십카드를 앞에놓고 노르웨이
국민들은 여유있게 "노 생큐"라고 대답했다.

마스트리히트조약(EU가입 요건을 규정한 조약)자격요건을 갖춘 "몇
안되는 나라"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결과였다.

석유와 가스에 안주하지않고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려는 재계의 자구노력,
"규제보다는 지원"이라는 정부의 산업정책 철학이 어우러져 탄탄한 경제를
일군 것이다.

전세계가 지역 블록으로 묶여가고 있는 국제적인 흐름속에서 노르웨이의
홀로서기가 성공할지 또하나의 실험대가 되고 있다.

< 오슬로=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