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가 언홍의 장딴지에 대나무를 그리며 자신의 몸을 보니 자기 가슴과
배에도 매화와 국화 난초 등의 얼룩처럼 그려져 있었다.

조금 전 언홍의 몸 위로 올라갔을 때 묻은 흔적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홍의 몸에 그려진 매화와 국화 난초 들고 약간씩 뭉개져
있기도 하였다.

"자 사군자를 다 쳤을니 우리 같이 목욕이나 하자"

저녁 무렵에 이미 시녀가 물통에 받아둔 목욕물로 두 사람은 몸에
그려진 사군자를 씻어내고 침상에 누웠다.

언홍이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았으나 가사의 물건은 이제 영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가다가는 언홍이 십년이 지나도 그냥
처녀로 남아 있을지 몰랐다.

가사는 언홍이 귀여워 죽겠는지 꼭 껴안고 있었지만 언홍의 입에서는
가늘게 한숨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하루는 형부인이 언홍을 자기 방으로 은밀히 불러 물었다.

"언홍아 요즈음 대감님을 잘 섬기느냐?"

가사의 몸 상태를 익히 알고 있는지라 형부인의 목소리에는 제법 여유가
있었다.

"네"

언홍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라서 하는 말인데 언홍이 너 대감님께 몸을
드리기는 했는냐?"

형부인이 살짝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언홍이 그 물음의 뜻을 짐작은 하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반문하였다.

그것은 대감님께 몸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어드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말이다. 대감님과 그러니까...... 교합을 했느냐는 말이다"

형부인이 말을 더듬거리며 좀더 구체적으로 물어왔다.

그 순간 언홍의 얼굴이 자기도 모르게 벌게졌다.

"......"

언홍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형부인이 비쭉 미소를 머금으며 언홍의
어깨를 한팔로 가볍게 감싸안았다.

"솔직하게 말해봐. 대감님 그거 아직 소식이 없지?"

언홍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만 끄덕였다.

"너를 데리고 올 때 대감님의 몸 형편에 대해 미리 말을 하지 않은 것
미안하구나.

하지만 미리 말을 하면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따라올 여자가 어디
있겠니.

대감님도 딱하지.

언홍이 너 같은 애를 안고 잔다고 사라진 정력이 되돌아올 리도
만무한데"

형부인은 어깨를 움찔하며 언홍이 안쓰럽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입에는 고소를 머금은 채.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