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지 않는 상품은 없애라"

규격별로 수천종의 상품을 판매하는 국내 굴지의 종합식품회사들이
경영구조개선과 물류비 절감을 위해 팔리지 않는 제품들의 생산, 판매를
과감히 중단하고 있다.

제일제당 미원 오뚜기식품등 국내 종합식품회사들은 식품산업 자체의
매출이 둔화되는등 영업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그동안 제품 가짓수에
치중했던 영업전략을 효율성 위주로 바꾸고있다.

제일제당은 지난 94년부터 팔리지 않는 제품의 대대적인 정리에
들어가 "즉석 계란국" "해물탕"등 냉동식품 육가공식품 등의 품목을
정리한 데 이어 지난해 전체 제품 규격 3,000여개 중 40%인 1,300여개를
정리해 현재 제품 종류와 품목 규격을 각각 90개 500개 2,400개로
조정했다.

미원은 지난해부터 제품 종류 조정에 관한 검토를 시작해 올들어
지난달까지 5개월 동안 현미식용유 사과식초 샐러드유 등 조미료
농수산제품 커피 음료 유지류 가운데 잘 팔리지 않는 제품들을 대대적으로
정리,300여개의 제품 규격을 없앴다.

미원은 제품수를 70여개, 품목을 350여개, 규격을 1,500여개로 줄였다.

이같은 작업 결과 영업 효율성이 크게 높아져 지난해의 적자를 벗어나
최근 영업이익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제품구성이 다양하기로 유명한 오뚜기식품도 올들어 김 당면 냉면
라면박사 골드 2종, 마요네즈류 3종 등 10개 품목 43개의 규격을 단종시켜
제품수를 40여개, 품목수를 150여개, 규격을 360여개로 줄였다.

이처럼 대형식품업체들이 대대적인 살빼기를 단행하는데는 유통업체와의
관계개선의지도 적지않게 작용하고있다.

소비자들로부터 인기없는 제품들은 유통업체의 수익성도 떨어져 슈퍼마켓
편의점등 점포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매장 진열대만 차지하는
천덕꾸러기로 신세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대형 식품회사들도 날로 위세가 당당해져가는 유통업체의 눈치를
보지않을 수없는 노릇이어서 천덕꾸러기제품 단종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에서 소비자들의 기호가 쉽게 변하면서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진 점도 종합식품회사들의 제품정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밖에 식품업체들이 취급 제품을 줄이고 있는 것은 그동안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야 하는 식품산업의 특성상 다양한 상품 구색을 갖추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경영전략이라고 판단, 많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품목수가 매출 신장으로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자원 집중도와 경영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고있기
때문이다.

또 각 유통업체들이 POS(판매시점관리제도)를 도입, 팔리지 않는 제품의
입점을 거부하는 데다 제조업체의 입장에서도 제품 품목 규격 등의 종류가
너무 많아 팔아야 할 제품이 무엇인지 혼란이 생기고 있는데다 포장비
재고관리비 반품비 물류비 등 각종 비용이 많이 들어 영업기반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가가치가 낮거나 경쟁력이 없는 제품은 정리해
전략상품에 자원을 집중 투입하고 있다"며 "배송 및 결품 방지로
유통업체에 대한 서비스 수준을 한단계 높일 뿐 아니라 경영 효율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