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 경주노선이 결국 "도심우회"로 결론지어졌다.

천년 옛서울의 문화재보존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지만,우리는 주요국책사업
이 이런 식으로 결정돼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동시에 갖는다.

문화재보존의 필요성을 간과하거나, 이번 결정이 잘못됐다는 뜻에서가
아니다.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가 결정된 것은 지난 90년이고, 그 노선을 형산강을
따라 경주도심을 지나도록 결정했던 것도 92년4월이다.

문화체육부가 문화재보론을 위해 건천~화천 우회노선을 들고 나온 것이
작년 3월이고 보면, 그 3년전에 "도심통과"를 결정한 셈이다.

우리는 지역개발논리를 내세운 건교부나 문화재보존을 들고나온 문체부를
어느 쪽을 편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우리가 아쉽게 여기는 것은 문체부가 왜 좀더 일찍 자기주장을 분명히
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이번 도심우회결정에 따라 경부고속철도공단은 그동안 경주노선과 관련해
작업해 놓은 것들을 모두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

항공측량 지형조사 지질조사 노선설계 환경및 교통영향평가등 2년여에
걸쳤던 작업이 무용지물이 돼 공기는 당초 계획보다 최소한 3년이 늦어진다
고 한다.

운임손실등을 감안하면 추가부담이 4조원을 웃돈다는 추산이다.

문체부가 "옳은 주장"을 늦게한 탓으로 그런 엄청난 손실이 빚어진 셈이다.

그 부담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국민이 떠맡아야 한다.

도대체 정부내 부처간 의사소통채널이 어떻게 돼있길래 이런 일이 빚어질수
있는가.

건국이래 최대규모의 국책사업인 경부고속철도를 놓고서도 이런 정도이니
다른 소소한 사업에부처간 협력은 어느 정도일지, 정부일인데도 이 모양인데
민간사업의 경우 부처간의 벽이 얼마나 높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관계부처장관회의는 경주노선 도심우회원칙을 결정하고도 문체부가 주장해
온 건천~화천노선을 대안으로 확정짓지는 않았다.

건천지역에 신라초기시대의 유물이 상당량 매장돼 있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일 것이라는 얘기다.

도심우회노선에서도 작업도중 땅속에 묻혀있던 문화재가 나올 경우 건설
작업은 전면 중단되고 문화재발굴작업에 들어가야할 것이기 때문에 공기
지연은 불가피하다.

문체부가 문화재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유물매장가능성이 가장 적은
노선을 제시하겠지만, 이 노선에 대한 사전적인 문화재발굴등으로 고속철도
공기지연을 가능한한 줄여야할 것이란게 건교부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엄청난 재원을 들여 경부고속철도를 서둘러 건설키로한 결정은 서울~부산간
물동량수송이 이미 한계를 맞고 있다는 분석에 바탕을 뒀었다.

여객수송을 고속철도에 넘기면 그만큼 기존철도의 화물수송능력이 늘어나
숨통이 터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2002년을 목표로 했던 경부고속철도건설이 1년 지연될 경우 철도공단의
이자추가부담이 1조원에 달할 것이란 계산이다.

그러나 물동량적체에 따라 경제계가 부담해야할 비용은 이보다 엄청나게
더 클 것이다.

이제 더이상 논란을 벌일 시간은 없다.

공기지연을 하루라도 줄일수 있도록 관계당국간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