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신탁회사들의 각서파문이 갈수록 태산이다.

가라앉기는 커녕 더욱 확산될조짐마저 엿보인다.

돈을 맡긴 고객이나 회사측이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모양이다.

고객입장에선 투신사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예금을 유치할땐 고수익이 보장된다고 해놓고 이제와선 원금도 못주겠다니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집단소송까지 불사할 태세다.

급기야 투신사 사장들이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선의의 피해자에게는 보상을 하겠다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고객들은 수긍할수 없다는 반응이다.

각서라도 챙겨두지 못한 경우엔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투신사직원들의 말만 밑고 돈을 맡긴 순진한 고객들의 불신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피해를 호소하는 투신사 고객들은 1천명이 넘는다.

이들이 맡긴 자금이 어림잡아 5천억원이상이다.

이중에는 퇴직금도 있고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받은 수업료도 들어 있다.

물론 올해부터 실시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한 큰손들의 돈도
있을게 틀림없다.

어떤 경우든간에 고객들이 완전히 만족할만한 결과가 될지는 의문이다.

소송에서 이기든 지든 차차리 정기예금이라도 들어둘걸 잘못했다는 탄식
이라도 나올게 틀림없다.

이쯤되면 금융불신치고는 심각한 상황이다.

투신사들은 필시 고객들에게 이런 식으로 "매도" 당하는게 억울할 것이다.

주식형 수익증권은 주가가 떨어지면 손해를 볼수도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과거 증시가 좋을땐 곱절의 이익을 본적도 있지 않는냐고 따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된데는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비단 투신사 직원들이 각서를 써준 탓만은 아니다.

무리한 예금유치경쟁을 벌인게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방조한 책임은 정부에게도 있다.

불행하게도 정부가 적극 추진한 금리자유화에서 그 원인의 일단을 찾을수
있다.

지난 91년말부터 시작된 금리자유화는 작년말의 3단계 조치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예금을 놓치지 않으려는 금융기관들은 금리인상으로 대응했다.

울며 겨자먹기식이었다.

대출금리와 별차없는 금리였다.

마침 경기는 내리막길을 접어들어 돈굴리기가 궁색해졌다.

남아도는 자금은 과감하게 주식시장에 투자하든가 아니면 다른 금융상품에
투자하는게 고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률보장각서를 써주는 투신사에 돈이 몰리는건 당연했다.

은행들은 고객이 예금한 돈을 투신사에 맡기고 투신사는 증권에 투자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앞두고 고객들은 조금이라도 고수익을 보장하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과열경쟁이 빚어질수 밖에 없었다.

돈을 빌려다 투자할 기업이나 사람은 많지 않은데 금리만 오르는건 분명
기현상이다.

일종의 거품이다.

돈은 금융권에서만 돌고 돌면서 버블을 만들어내는 꼴이 됐다.

그러나 버블은 언젠가 꺼지게 돼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그 결과는 자명해진다.

우리보다 먼저 금리자유화를 실시한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지난 83년 10월1일 미국의 예금금리는 완전 자유화됐다.

바로 그날 케미컬은행은 이런 벽보를 내걸었다.

"6개월짜리 정기예금금리를 10.5%로 대폭 올립니다"

이에대해 시티은행과 체이스맨해튼은행은 11%로 인상한다고 응수했다.

은행들의 예금유치경쟁은 가히 백화점의 바겐세일을 무색케할 정도였다.

당시 은행예금주들은 아마도 흐뭇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도산이었다.

다수의 은행들이 쓰러지거나 아니면 합병을 선택하는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은행들에게 예금했던 고객들이 많든 적든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이다.

투신사에 돈을 맡긴 우리의 고객들과 마찬가지로.

문제는 앞으로 이런 위험성이 더 커진다는데 있다.

선물시장이 도입되고 외국의 주식시장이나 외환시장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게 돼있다.

순간의 판단미스로 수백만달러에서 수천만달러의 거금을 날려버릴수도
있다.

닉 리슨이란 젊은이의 잘못으로 파산한 영국 베어링증권사건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미 국내에서도 그런 조짐은 나타났다.

지난해 수협에서 외환투자를 하던중 1백억이 넘는 거액의 손실을 본게
그렇다.

갈수록 파문이 확대되고 있는 투자신탁회사의 각서사건도 마찬가지다.

"주가만 오르면 해결되는데..."라고 되뇌는 투신사 직원들이 있다면
닉리슨과 다를바 없다.

주식시장을 카지노쯤으로 여기지 않았나 싶다.

어찌보면 우리의 금융시스템은 카지노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도시에 우뚝 솟아있는 오피스빌딩가에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게임에
열중해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의 눈동자는 명멸하는 컴퓨터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다.

룰렛 원반위의 은빛 공이 쨍그렁하며 소리를 내어 회전하는 것을 주시
하면서 놀고 있는 카지노의 갬블러와 너무나 닮아가고 있다"(수전
스트레인지, 카지노 자본주의)는 지적이 외국의 얘기만은 아닌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