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에서 부여방면으로 10분쯤 자동차로 달려가다보면 일명 "십자가"라
불리는 네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해 4백m 정도더 가면 도로변에 4만6천평규모의 공장이
나타난다.

PE(폴리에틸렌)및 PVC원단을 생산하는 한국타포린 부여공장(충남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

공장에 들어서면 사방에 꽃나무와 정원수로 가득한 정원과 운동시설이
잘 갖춰진 넓은 운동장이 눈에 들어온다.

회사내에 휴지하나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원자재와 완제품들의 정리정돈도 잘 돼있다.

근로자들 스스로가 아침 일찍 출근과 동시에 담당구역을 깨끗이 청소하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현장에 생산성 향상을 독려하는 프랭카드 하나 걸려있지 않다.

형식보다는 실천을 강조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는 지난 86,87년 전국의 생산현장이 민주화열풍에 휩싸여 있을때도
분규없이 지나갔다.

파업참여 유혹에도 아랑곳 않고 생산활동에만 전념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근로자들 모두가 "내가 곧 사장"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있기때문이다.

오세윤 사장은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내가 필요로하는 것이 있으면
생산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근로자들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항상 근로자의
입장에서 가장노릇을 하고있다"고 자랑한다.

오사장은 "근로자들도 회사의 경영상태를 알아야 내일 돌보듯 일한다"는
신념으로 창업때부터 경영상태를 근로자들에게 일일이 공개해 왔다.

이 회사는 중요한 사안의 경우 근로자들과 협의를 한다.

틈만 있으면 근로자들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눈다.

한국타포린의 노사협의회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있다.

근로자의 입장을 충분히 회사측에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과의 의사교류에 별 어려움이 없다.

웬만한 다른 회사의 노조보다도 입김이 세다.

주요경영회의에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측 대표가 참석해 근로자들의 입장을
밝힌다.

기계구입시에도 근로자대표가 생산목표설정등 주요경영사항의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노사협의회는 경영자의 잘못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질타를 할 정도이다.

임금협상도 노사협의회가 중심이돼 진행됨은 물론이다.

박흥식근로자대표는 "우리회사는 노사협의회가 노동조합 역할을 하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수시로 열리는 노사협의회를 열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91년과 92년에는 오사장이 부여공장에 내려와 근로자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생산현장에서 동고동락을 했다.

공장주변 청소는 물론 생산현장에서 기름때도 만졌다.

저녁에는 근로자들과 소주를 마시며 허심탄회한대화를 나눴다.

"근로자를 벗삼아 생활한다"는 오사장의 생활철학 단면이다.

근로자들이 지난 5월 사우회를 구성할 때 오사장은 우리사주 구입자금으로
5억원을 선뜻 내놓았다.

근로자들은 노사협의회를 중심으로 생산성향상에 노력하고 있다.

근로자의 제안제도도 활성어화되고 있다.

근로자가 일일이 삽으로 원료를 투입하던 것을 자동믹서장치와 사일로
시설을 개발해 배합비율조정과 자동화를 실현, 원단의 질 향상과 인원
절감효과를 가져왔다.

제안제도로 생산성을 높인 대표적인 사례다.

PE부문의 경우 시간당 생산증가율이 5% 높아졌다.

올해 PE생산량은 지난해의 하루 63t에서 67t으로 늘어났다.

로스(손실)율도 9%에서 8%로 낮아졌다.

PVC부문 생산량은 93년의 5천5백t에서 94년 6천9백t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7천2백t 달성을 목표로 하고있다.

이 회사의 연간총생산량은 지난 90년 1만2천5백90t, 91년 1만3천9t,
92년 1만6천80t, 93년 1만8천8백48t, 94년 2만78t을 기록했다.

올해에는 2만4천t 달성이 무난할 전망이다.

오사장은 "장기적으로 근로자를 위한 사원아파트 건립을 위해 사내에
2천평규모의 부지를 마련해 놓았다"며"공개경영으로 믿음과 신뢰를 키워
영원히 노사갈등 없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강조한다.

< 부여 = 이계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