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춘이 궁궐로 들어갈 때 함께 데리고 갔던 포금이라는 시녀가 들어와
대부인에게 엎드려 절하였다.

옷소매로 눈물를 훔치며 원춘을 따라갈 때만 해도 어리게 여겨지던
포금이 이제는 어엿한 처녀가 되어 있었다.

포금이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대부인은 만감이
교차하였다.

새삼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져오기도 하였다.

"포금이 너도 고생이 많았겠구나"

대부인이 포금을 안아 일으키니 포금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포금이를 별실로 데리고 가서 잘 대접해 주도록 하여라"

대부인이 형부인에게 지시를 하자 형부인이 포금을 귀한 손님 모시듯
해서 별실로 데리고 갔다.

이전에는 이 집에서 천한 시녀 노릇을 하던 포금이었는데 이제는
후비 덕분에 대접을 받게된 것이었다.

이때 원춘의 아버지 가정이 주렴밖에서 원춘에게 문안을 드렸다.

주렴밖에서 드리는 문안이라 원춘이 말릴 틈도 없었다.

엉겁결에 아버지의 문안을 받은 원춘이 주렴 안쪽에서 답례를 하며
말했다.

"시골의 평민들은 비록 소금반찬에 무명옷으로 지내더라도 천륜지락을
맛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부귀를 누리면서도 골육간에 헤어져
있으니 사는 재미가 없사옵니다"

딸의 하소연을 주렴밖에서 듣고 있던 가정이 마음이 에이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두 뺨에 눈물이 흘러 내렸다.

가정이 여러가지 간곡한 말로 원춘을 위로하며 격려하였다.

원춘이 후비가 된 사실이 영국부 가문에 얼마나 영광인가를 되풀이
강조하였다.

가정이 물러간후 가진의 아내 우씨와 희봉이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와서
후비 원춘에게 아뢰었다.

"연석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 쪽으로 옮기도록 하시죠"

원춘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보옥의 안내를 받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후비 별채 원내로 다시 들어갔다.

등불들이 대낮처럼 밝혀진 정전뜰에 연석이 차려져 있었는데 호사롭기가
그지 없었다.

원춘은 연석가운데 자리에 앉더니 필묵을 가져오라 하여 정전을 비롯한
몇곳의 이름을 지었다.

특히 "고은사의"라는 정전의 이름이 인상적이었다.

은혜와 의리를 잊지않고 깊이 새긴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은혜는 하늘의 은혜, 황제의 은혜, 부모의 은혜들을 의미할
것이었다.

원춘은 자기가 얼마나 큰 은혜속에 살고 있는가를 그 정전 이름을
통하여 고백한 셈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