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일 노전대통령의 소환조사결과가 별다른 알맹이가 없자 매우 실망
하면서 앞으로 기업인수사가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라는 인식아래 기업인 수
사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간부들은 이날 앞으로의 수사방향을 논의하면서 노전대통령에게 돈을
건넨 기업간부의 소환일정을 점검하는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노전대통령의 조사받는 태도가 매우 부실했다며 상당히 실망스러
워하는 모습.

검찰은 노씨가 비자금의 규모와 잔액 등에 대해서는 이미 제출된 소명자료
에 있는대로만 답변했으나 자금조성부분부터는 거의 묵묵부답으로 일관, 대
국민사과문 수준에서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했다고 언급.

특히 노씨는 조사를 받는 16시간여동안 거의 내내 민감한 사안에 대한 신문
이 진행될때마다 알맹이 있는 진술을 회피한데다 특히 자금을 건네준 기업체
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기억이 없다" "모르겠다" 등 3가지 답변으로
일관, 문영호중수2과장 등 수사진 들을 김빠지게 했다는 것.

<>노씨는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의 전직대통령 4천억원 보유파문 당시 본인은
전혀 무관하다고 발뺌했던 사실에 대해 "부인했던 것에 대해선 뭐라 할말이
없다"며 매우 곤혹스런 표정이었다고 검찰수사관계자가 전언.

노씨는 "돈이 없다고 위장한데 대해서야 이제와서 무슨 변명이 있을 수 있
겠느냐"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후회의 빛이 얼굴에 가득했다고.

검찰은 50대 재벌기업인의 명단을 직접 노씨에게 제시, 확인작업을 벌였고
노씨는 "말할 수 없다"는 식으로 계속 진술을 거부했으나 노씨 진술의 어감
상 돈을 전달한 기업인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상당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
려졌다.

<>노 전대통령을 9시간동안 단독으로 조사한 김진태검사는 "노전대통령이
조사도중 한마디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말해 눈길.

김검사는 "노 전대통령에게 돈을 건네준 기업체명단을 말해줄 것을 요구하
자 "말할 수 없다"로, "대선자금 등 사용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고 대
답했다"며 이는 "모른다"와는 질적으로 다른 대답이라고 강조.

김검사는 또 사건전모를 밝히려는 검사와 시종 굳은 표정의 피조사자가 있
었을 뿐"이라고 말해 노씨가 조사도중 상당한 곤욕을 치렀음을 암시.

<>노씨는 검찰진술에서 자금조성부분과 관련, 이현우 전경호실장과 전혀 다
른 진술을 해 노씨와 이 전실장과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
이 설득력있게 대두.

노씨는 검찰에서 "돈을 건네준 기업체총수나 간부들과 만나는 면담장소나
일정 등을 이현우 전경호실장이 주로 주선하고 관리했다"고 진술한 반면 이
전실장은 당시 "나는 주는 돈만 받아 관리했을 뿐 비자금의 조성과정에 대
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

이와관련 검찰일각에서는 "이 전실장이 출두당시부터 노씨와 전혀 교감이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됐었는데 이같은 엇갈린 진술에 비춰 두
사람사이에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

<>노태우 전대통령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켰던 김기
수검찰총장을 비롯한 수뇌부와 수사팀들은 이날 오전9시께까지 모두 정상출
근.

특히 안강민중수부장을 비롯, 이정수수사기획관, 문영호중수2과장 등 이번
수사의 핵심멤버들은 출근 즉시 안부장 사무실에 모여 앞으로의 수사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노씨에게 돈을 건네준 기업간부의 소환일정 등을 재점검하는
등 바쁜 움직임.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노씨의 소환시기에 맞춰 수사를 진행했지
만 일단 노씨에 대한 1차조사가 끝난 만큼 이제붙 진행되는 것이 진짜 수사"
라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모습.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대통령으 소환조사가 이뤄져 팽팽한 긴장감이 감
돌았던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는 노전대통령이 16시간여만의 마라톤조사끝에
귀가조치되자 마치 큰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처럼 다소 썰렁한 분위기.

또 조사못지않게 예우와 경비 등에도 별도의 신경을 써야 했던 검찰은 비록
노씨로부터 "알맹이"있는 사실을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일단 사법사상 처음
이뤄진 전직대통령의 소환조사가 일단 마무리됐다는 안도감에 한시름을 놓는
모습.

<>검찰은 "노씨가 비자금의 잔액으로 이미 공개한 1천8백57억원에 대해 한
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외에도 다른 곳에서 실명전환을 해준 것도 있다"고 밝
혀 노씨의 비자금관리 및 운용에 다수의 기업체들이 연루됐음을 시사.

검찰관계자는 "현재 계좌추적결과 상업 동화 동아투금 등에 차.가명계좌로
입금된 비자금의 잔액을 제외하면 대부분 실명전환된 상태로, 노씨명의로 실
명전환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실명전환된 비자금액수는 약1천억원에 이를 것
으로 추정된다"고 설명.

<>안중수부장은 기업인 조사와 관련, "지난 94년도의 내사자료도 참고
하겠다"며 현 검찰 수뇌부로서는 처음으로 94년 초반에 6공 비자금에 대한
내사가 진행됐던 사실을 시인.

안부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사건을 조금이라도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서는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해 기자들이
"그렇다면 94년 내사 자료 등을 참고할 생각이냐"고 묻자 "그 방법도 고려
대상"이라며 내사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

< 윤성민/한은구/송진흡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