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7일자) 외교역량 안에서도 발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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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동안 김영삼 대통령이 펼친 유엔 외교의 성과는 국내 이목이 전임자의
비자금사건에 가려 있지만 않았더라면 국민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심어줄
만큼 빛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딱히 특정 대통령의 업적이라기 보다 유엔 50년사에 투영된 한국
위상변화의 궤적이라 할수있다.
뉴욕을 도착해서 떠날때까지 한국의 대통령에게 비쳐진 각광을 보고 자타
공히 금석지감을 갖지 않을수 없었다.
감시하 총선과 정부수립, 공산침략과 응징, 수십년의 남북알력, 5년전
동시가입등을 기억하는 유엔 회원국들에게 있어 한반도는 남다른 관심의
표적이다.
세계지도자상 지명에서 보이듯 반독재투쟁, 문민정부 실현이라는 대통령
개인의 조건도 작용했겠지만 그보다는 세계 중진국으로의 한국의 급격한
비중 증가가 결정적으로 반영된 탓이다.
전후 양진영이 대치하는 일선에서 원조를 받던 신생 빈국이 10위권에
육박하는 민주 산업국으로 변모, 저개발국 원조와 세계문제 해결에 능동적인
역할을 시작한 한국의 존재야 말로 전후 유엔이 지켜본 기적의 하나랄수
있는 것이다.
특히 70년대 후반 중국의 시장경제 전철, 80년대말 소련및 동구권의
체제전환에서 한국이 맡은 자극제 역할은 국내서보다 외부 세계에 더 깊이
인각되어 있다.
말하자면 경제개발과 민주화가 상승작용을 하는 실험대, 전시실의 구실을
한국은 성공적으로 해냈던 것이다.
이는 결코 과장도 자기도취도 아니다.
그중 190여 회원국중 중요 16개국 멤버로 당당히 참여, 김대통령이 첫번째
연설에 나서 제안한 2000년 유엔 개혁회의 소집안이 큰 반응을 얻은 감회는
깊다.
그 위에 프랑스등 2국간정상 연쇄회담이 밀려 대상을 10개국으로 억제하는
데 애를 먹었던 사실 하나로도 국왕 대통령등 원수만 160개국이 회동한
인류사상 최대의 외교각축장임을 감안할때 강대국이 아니면 바라보기 힘든
남이 부러워할 성과였다.
물론 경제의 양적성장 도취가 수많은 허점을 드러내듯 이리저리 쫓아
다니며 많이만 만난다고 좋은 외교가 되는 것이 아님은 말할나위 없다.
대화의 내실과 그 결실 가능성이 중요하지 만일 카메라 앞에서 악수와
미소에 정신을 쏟다가 언질를 남발, 이행부담을 후임에 떠넘기는 외교라면
오히려 해국이 될수 있다.
그동안 발표로도 유익한 회담내용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외무당국은 단시일에 이루어진 정상및 각급 회담의 내용을
정리하여 신중한 스크린을 해야할 것이다.
정상간 대화라도 국익에 반하는 부분은 시정하며 상대로 부터 받아낸
언질은 실현되도록 밀고가는 뒷 마무리가 없다면 말의 성찬일 뿐이다.
또한 대통령으로서도 유의할 일이 있다.
방문외교의 결실추구에 못지 않게 전임자의 비자금 사건으로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정국은 물론 금융 산업 경제 사회 각계의 황폐화한 분위기를
수습함에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세계와 21세기를 논하는 외교의 성취이상으로 땅에 떨어진 국민 사기를
소생시켜 국제경쟁력 향상에 다시 힘을 모으는 눈앞의 과업 또한 소중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7일자).
비자금사건에 가려 있지만 않았더라면 국민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심어줄
만큼 빛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딱히 특정 대통령의 업적이라기 보다 유엔 50년사에 투영된 한국
위상변화의 궤적이라 할수있다.
뉴욕을 도착해서 떠날때까지 한국의 대통령에게 비쳐진 각광을 보고 자타
공히 금석지감을 갖지 않을수 없었다.
감시하 총선과 정부수립, 공산침략과 응징, 수십년의 남북알력, 5년전
동시가입등을 기억하는 유엔 회원국들에게 있어 한반도는 남다른 관심의
표적이다.
세계지도자상 지명에서 보이듯 반독재투쟁, 문민정부 실현이라는 대통령
개인의 조건도 작용했겠지만 그보다는 세계 중진국으로의 한국의 급격한
비중 증가가 결정적으로 반영된 탓이다.
전후 양진영이 대치하는 일선에서 원조를 받던 신생 빈국이 10위권에
육박하는 민주 산업국으로 변모, 저개발국 원조와 세계문제 해결에 능동적인
역할을 시작한 한국의 존재야 말로 전후 유엔이 지켜본 기적의 하나랄수
있는 것이다.
특히 70년대 후반 중국의 시장경제 전철, 80년대말 소련및 동구권의
체제전환에서 한국이 맡은 자극제 역할은 국내서보다 외부 세계에 더 깊이
인각되어 있다.
말하자면 경제개발과 민주화가 상승작용을 하는 실험대, 전시실의 구실을
한국은 성공적으로 해냈던 것이다.
이는 결코 과장도 자기도취도 아니다.
그중 190여 회원국중 중요 16개국 멤버로 당당히 참여, 김대통령이 첫번째
연설에 나서 제안한 2000년 유엔 개혁회의 소집안이 큰 반응을 얻은 감회는
깊다.
그 위에 프랑스등 2국간정상 연쇄회담이 밀려 대상을 10개국으로 억제하는
데 애를 먹었던 사실 하나로도 국왕 대통령등 원수만 160개국이 회동한
인류사상 최대의 외교각축장임을 감안할때 강대국이 아니면 바라보기 힘든
남이 부러워할 성과였다.
물론 경제의 양적성장 도취가 수많은 허점을 드러내듯 이리저리 쫓아
다니며 많이만 만난다고 좋은 외교가 되는 것이 아님은 말할나위 없다.
대화의 내실과 그 결실 가능성이 중요하지 만일 카메라 앞에서 악수와
미소에 정신을 쏟다가 언질를 남발, 이행부담을 후임에 떠넘기는 외교라면
오히려 해국이 될수 있다.
그동안 발표로도 유익한 회담내용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외무당국은 단시일에 이루어진 정상및 각급 회담의 내용을
정리하여 신중한 스크린을 해야할 것이다.
정상간 대화라도 국익에 반하는 부분은 시정하며 상대로 부터 받아낸
언질은 실현되도록 밀고가는 뒷 마무리가 없다면 말의 성찬일 뿐이다.
또한 대통령으로서도 유의할 일이 있다.
방문외교의 결실추구에 못지 않게 전임자의 비자금 사건으로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정국은 물론 금융 산업 경제 사회 각계의 황폐화한 분위기를
수습함에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세계와 21세기를 논하는 외교의 성취이상으로 땅에 떨어진 국민 사기를
소생시켜 국제경쟁력 향상에 다시 힘을 모으는 눈앞의 과업 또한 소중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