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삼성그룹회장은 최근 광주 구미 거제등 그룹 계열사의 지방공장을
시찰하면서 지방공장의 임원들과 즉석에서 경영전략회의를 주재했다.

냉장고를 제조하는 광주공장에선 "가전제품은 그룹의 얼굴인만큼 특히
마무리작업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고 창원의 중공업공장에선
"현재 영업이 어렵더라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

부품개발비나 연구개발비를 아끼겠다는 오그라진 발상을 하지말라"고
강조했다.

그룹의 신경영을 주도한 이건희회장이 직접 일선 공장을 방문해
근로자들을 격려하는 "현장경영"을 실천한 것.총수의 지방 공장
방문은 이회장이 그룹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변화의 바람은 이처럼 총수의 경영스타일마저도 바꾸고 있다.

LG그룹의 사장단은 지난달 초 미국의 GE(제너럴 일렉트릭) EDS등 초우량
기업을 방문, 해당 기업의 사업장을 둘러보고 현지사장단 세미나를 가졌다.

미국내 우량기업의 최고경영자와도 만나 선진기업의 경영혁신사례를
"벤치마킹"했다.

이에 앞서 LG그룹의 사장단들은 현대중공업등 국내 중후장대형 사업장을
둘러보고 타기업의 경영혁신 "현장"을 체험하기도 했다.

"초일류가 되기 위한 변신의 몸부림".국내 기업들에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경영혁신운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기업의 경영혁신운동은 위기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위기란 다름아닌 경영환경의 변화다.

승자와 패자를 분명하게 갈라 놓는 시대,2위를 적당히 지키는 것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시대.이게 바로 국제화 세계화로 표현되는 무한경쟁시대의
특징이다.

"무한경쟁시대에는 초일류만이 살아남는다"는 절박한 상황인식이야말로
국내 기업들이 혁신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국내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경영혁신운동은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신경영은 과거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각 그룹의 총수들이 직접 경영혁신운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그만큼 위기의식을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또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이기도 하다.

총수들의 현장경영은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김우중 대우그룹회장 김석준 쌍용그룹회장등은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직접 참석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유럽시장 공략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했다.

이건희 삼성그룹회장도 삼성전자의 영국 윈야드 복합가전단지 준공식에
참석,삼성전자의 유럽시장 공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계획이다.

기업들의 채용제도에서도 변화는 감지될 수 있다.

현대그룹은 올하반기 입사시험때부터 필기시험을 폐지하고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하기로 했다.

삼성그룹과 LG그룹은 직무적성검사 형식의 테스트로 필기시험을 대체해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암기식위주의 입사시험만으론 변화하는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뽑기 힘들다는 인식변화인 동시에 "새조직엔 새사람"을 충원하겠다는
계산이다.

연공서열에 의존하던 전통적인 인사제도나 고과제도도 급속도로 허물어져
가고 있다.

대신 "능력급제"나 하급자가 상급자를 평가하는 "상향식 평가제도"가
금호나 인켈등 중위 그룹에까지 도입되고 있다.

대웅제약 거평 나산등 중견그룹들은 임원뿐만아니라 대표이사까지도
공채로 뽑는등 기존의 인사틀을 깨고 있다.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을 위한 세계일류화상품개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기술의 현대,세계의 현대"를 내세우며 기술개발을 통한
"삶의 질" 향상에 경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그룹은 계열사 조직원들의 업적평가를 과거의 매출 순익등 양적
기준에서 연구개발비 고부가가치사업비중등 질적 기준으로 아예
바꿔버렸다.

LG그룹은 "정도경영"을 통한 고객만족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

대우그룹은 자동차 조선 기계 전자 통신등 5대 사업부문에서 모두 28개
품목을 세계 1등 상품으로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들 품목에
집중적인 개발비를 쏟아붓고 있다.

선경그룹 역시 수펙스를 통해 개발실적이 저조한 경영자는 철저히
책임을 묻기로 하는등 그룹차원에서 초일류상품 개발을 강도높게
추진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강화도 경영혁신운동의 일환이다.

중소기업이 잘돼야만 모기업이 잘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납품협력업체에 대한 현금지급 <>어음결제기일단축 <>경영및 기술지도
등 각종 중기지원책은 전시효과만을 노린 것은 아니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의사결정의 신속화와 조직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한 조치도 앞다퉈
마련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20여개의 결재단계를 3단계로 축소해 의사결정단계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한진그룹은 각종 회의시간을 종전보다 30% 줄이는 한편 보고도 문서에서
구두및 메모보고로 대체했다.

"모래시계"회의를 도입해 회의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효성그룹은 "신효성창조"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각 계열사별로 의식개혁
부서를 설치,사원과 간부간의 순회인터뷰를 실시하고 있다.

이밖에 금호 두산등 많은 기업들이 전산망이나 팩시밀리를 통해 회장에게
직보할 수 있는 "사내 신문고"제도를 도입했다.

주요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변화의 방법론은 이처럼 다양하다.

<>고객만족 경영 <>팀제 확대 <>사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품질위주
경영 <>자율과 창의성 중시 등은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지향점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변화 <>조직의 변화 <>제도의
변화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에 살을 붙여 풍부한 변화의 내용물을 담아내는 것은 각
조직구성원들의 몫이다.

최근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국내 2백97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경영혁신운동 추진상황을 보면 재계의 변화 몸부림을 실감할 수 있다.

조사대상기업의 70%가 "경영혁신운동을 통해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준비중이라는 업체도 17%에 달했다.

그러나 이같은 혁신운동의 성과는 아직 미지수다.

국내 기업들의 경영혁신이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미국식 경영혁신운동인 리스트럭처링 리엔지니어링 벤치마킹등도 최근
국내 기업에 잇달아 도입되고 있으나 섣불리 성공여부를 진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외국 기업이나 다른 기업이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해 성공을 거둔
사례는 기업경영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일 뿐이다.

똑같은 방법을 채택한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양자강 이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했다.

풍토와 환경이 다른 경영기법을 정착시키기 위해선 끊임없는 내재화가
필수적이다.

경영혁신의 성과는 전적으로 조직원들의 창의성과 의욕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