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5월8일 이승만대통령은 "5.8라인"을 공표했다.

"이날 이후 자동차 증차를 무조건 억제한다"는 대통령령을 발동한 것이다.

요즘의 교통혼잡 같은게 있었을 턱이 없는 50년대에 "웬 증차억제 조치냐"
는 의문이 들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의 고민은 따로 있었다.

당시 국내 석유공급은 코스코(KOSCO)라는 미국계 석유저장회사가 독점하고
있었는데, 이 회사가 걸핏하면 석유판매를 중단해 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몇대 되지도 않던 승용차와 버스조차 굴릴 수 없게 됐음은 물론
이고 등잔불용 기름 구득난까지 일어났다.

코스코사의 석유판매 중단 조치는 미국정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통일정책등을 놓고 미국측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있었던 이승만정부를
"길들이기" 위해 대한압력 카드로 써먹었던 것이다.

"5.8라인"은 산업주권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되새기게 하는 이대통령의 "유훈"이다.

이런 예는 경제개발 자금을 미국에 의존하던 개발연대 초기의 박정희정부
때도 비일비재했다.

정유 비료산업 등의 육성정책을 놓고 하나같이 미국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말이 좋아 지도지 간섭에 진배 없었다.

미국이 대한경제원조를 전담시키기 위해 60년대까지 국내에 설치했던
"유솜"은 기실 "경제적 조선총독부"였다.

산업의 주권, 나아가 경제적 주권이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동안
"독립래불독립" "광복래불광복"을 되뇌일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내일은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준비해 온 "8.15광복 50주년"이다.

때마침 "유솜"을 대신해 한국에 차관을 제공해 온 IBRD (세계은행)도 올해
를 마지막으로 대한차관을 완전 중단한다.

선진국경제 진입의 분수령이라는 1인당 GNP(국민총생산) 1만달러시대에
들어선다는 예고도 있다.

세계 10위권 통상대국으로서의 책무가 거론되는 가운데 내후년엔 선진국들
의 경제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도 가입한다.

2000년대의 "G7 진입"도 들먹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개별 산업쪽에서도 괄목할만한게 많다.

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 D램 분야에선 세계 최강국을 자랑한다.

"5.8라인"으로 애꿎게 된서리를 맞아야했던 자동차산업을 비롯해 조선
철강 가전 등의 산업에서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그만큼 지난 50년동안 한국의 경제발전은 눈부셨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완전한 경제 독립을 성취했는가.

자문의 자답은 "노"다.

적어도 경제광복에 관한 한 아직도 멀었다.

핵심 부품과 기자재가 아직도 "대일 의존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따위의 판에 박은 듯한 이유를 대기는 싫다.

일본 엔화값의 고저에 따라 웃고 우는 산업계를 들어 한국은 "외세 종속
변수"에 의지해 불안한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외세종속의 탈피, 즉 경제광복을 완성하기엔 지금 우리의 돈.노동.토지
등 생산요소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2~3배나 되는 금리로,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높은 임금을
갖고, 땅 한평에 수십만원이나 하는 공장부지로는 애당초 경제적인 "광복
운동"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저비용을 찾아 잇달아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좀 심하게 빗댄다면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이나 미국으로 건너갔던
선열들처럼.

상황이 이런데도 정책당국에선 고비용구조를 타파하려는 노력에 무심하다.

설상가상으로 규제그물을 쳐가며 고비용의 원인제공까지 하고 있다.

산업공동화가 우려된다며 벌써 몇년전에 철폐됐던 "자기자본조달 의무
비율"같은 걸 다시 부활시켜 놓은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의 기업과 산업을 국외로 내몰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한국 정부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분명한 건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기업이 똘똘뭉쳐 경제광복을 완성하는 일을
더이상 늦춰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올초 출범한 WTO(세계무역기구)체제와 함께 나라 안팎에 거센
개방과 무한경쟁의 파고가 일고 있다.

19세기말 조선반도 패권을 놓고 미.일.청.러시아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다면, 이제는 "한국 시장"을 놓고 미.일.EU등 각국의 기업들이 노도와
같이 밀려오고 있다.

구한말 국체의 몰락은 당시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쇄국정책, 바꿔말해
규제적인 행정에 있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 결과 상당수 애국지사들은 조국을 떠나 이역을 맴돌 수 밖에 없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정부는 경제광복운동의 주역인 기업들이 왜 해외로
나가는지 그 원인을 제거해 주지는 못할망정 그저 족쇄나 채우는 "수구"를
답습하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