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은 말 수는 적게, 어투는 꼼꼼하게, 목소리는 낮게, 어조는
느리게 하는 것을 언사의 지침으로 삼았다.

말 수를 적게 하는 것은 "실천"을, 어투를 꼼꼼히 하는 것은 "진실"을,
목소리를 낮게 하는 것은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어조가 느린 것은 그
말이 나온후의 "반향"을 염두에 두었기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보시대 자기 피아르시대인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 사람이 그런식으로 말을 했다가는 출세는 커녕 굶어죽기 꼭 알맞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를 분석해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자기능력을 한껏
선전해 남을 뛰어넘는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에 위트와 유머를 종회무진으로 구사하는 사람이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 한다.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가능한한 과장해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 소위
유능한 사람의 바람직한 행동이다.

그러다보니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요즘 한창인 6.27선거유세에서 남발되는 후보들의 발언에는 이런 세태가
그대로 나타난다.

"가능한 불가능이 있고 불가능한" "TK정서를 TK정신으로 승화시키겠다"
"도민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쥐만 잘 잡으면되지 흰고양이
검은 공양이가 무슨 문제냐" 후보들의 혀끝에서 나온 재치만 번득이는
이런 류의 인기발언은 유권자의 귀를 간지럽히는 역할밖에 못한다.

"상가지역에 명문고 유치" "지하도시건설" "학교급식제전면실시" "관내
교도소이전" "중소기업저금리지원" "난지도에 첨단미래도시건설" 등 남발
되는 공약은 직책의 권한과 업무의 한계조차 모르는 구청장후보들의
헛소리일 뿐이다.

이미 호랑이를 탄꼴이니 내릴수도 없는 후보들의 처지가 딱하다.

조선왕조시대에 관찰사이하 부사 군수 현감등 지방관의 업무를 규정한
"수령칠사"라는 것이 있다.

농산성 호구증 학교흥 군정수 부역균 사송간 간독식의 일곱가지 임무
인데, 지방의 행정은 물론 사법 군사 조세 교육 주민교화까지 수령들이
모두 관장했으니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공약을 들을때마다 조선시대의
관찰사나 현감이 된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실행을 전제로 말을 해야지 그렇지 않고 펑펑 쏟아놓기만하면 결국
인격도 무너져 버린다.

유권자가 원하는 것은 법을 잘지키는 공복인 "순량"이지 명성과 행실,
말과 행동이 다른 "향원"은 아니다.

"일언불중 천어무용"이란 말도 있지않은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