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제약공업역사는 거의 1세기전인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조말 궁중선전관이었던 민병호선생이 한성부 수렛골(현재의 중구
순화동) 자택에 동화약방을 세우고 활명수를 만들어 판 것이 국내제약공업의
효시로 전해진다.

궁중의 전통비방에 서양약처방을 혼합한 이 약은 우리나라최초의 양약
이었던 셈이다.

거의 1백년이 지난 지금,다른 제조업보다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제약산업의
위상은 긴 역사에 미치지못하는 다소 왜소한 모습이다.

지난 93년중 국내의약품시장의 규모는 약 4조9천억원정도로 집계됐다.

4조9천억원이면 같은해 현대자동차 1개사매출의 70%수준이다.

제약업체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는 동아제약이 93년에 매출 2천억원을
겨우 넘어섰다.

1위제약업체조차 1백대제조업체명단에 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의약품생산실적은 지난 93년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8%,
제조업GDP의 6.5%에 이른다.

영세한 산업규모에 비하면 기여도가 적지않다는 것이 제약업계의 주장이다.

시장규모가 왜소한데 비하면 참여하는 기업은 대단히 많다.

의약품을 만든다고 제약협회에 등록한 업체수는 93년에 378개나 됐다.

이가운데 년간 생산액이 1천억을 넘는 업체는 12개사에 불과하다.

또 생산액규모가 3백억원이상인 업체가 전체의 21.4%인 81개사이다.

전체제약업체중 39.2%나 되는 148개사가 10억미만으로 대단히 영세하다.

현재 이들 업체들이 생산해내는 의약품종류는 약 1만4천여종에 달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같은 상황이 다소 달라질 것이다.

KGMP(우수의약품생산시설제도)가 지난해 5월부터 실시됨에 따라 KGMP시설
투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당수의 업체는 도태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378개업체중 약 36.5%에 해당하는 138개사가 이미 지정을
받았다.

시장은 협소한데 참여기업이 많으니 당연히 과당경쟁이 생기게 마련이고
유통구조도 불안정한 형태를 띨 수 밖에 없다.

이때문에 제약업체의 수익구조는 대단히 취약하다.

반면 다른 공산품에 비해 규제와 감시를 가장 많이 받는 제품이 바로
의약품이다.

사람의 생명, 건강과 직결돼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제약업계종사자들가운데에서는 "제약업종이 보사부가 아닌 상공부소관
이었다면 조금은 더 성장했을 것"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제약업종 본래의 성격을 생각하면 규제와 감시위주의 정책대상
이라는 것은 제약업종의 팔자인 셈이다.

UR타결이다, WTO체제출범이다 해서 대다수의 국내산업이 개방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만 제약산업에는 이것이 새로운 일도 아니다.

의약품시장은 이미 지난 83년이래 단계적으로 수입자유화가 진행돼왔다.

94년현재 거의 모든 품목(99.4%)의 수입이 개방돼있고 수입관세율도 8%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다.

의약품도매업은 지난 89년에 개방됐으며 90년에는 의약품제조업에 대해서도
자본투자가 완전히 개방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 87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고 미국과 EU(유럽연합),
스웨덴, 스위스, 일본등에 미시판물질의 특허를 소급보호해 주기로 함에
따라 국내제약업체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물질특허도입에 따라 외국업체가 특허를 가지고 있는 의약물질은 제조판매
할 수 없게 됐고 기술도입에는 엄청난 액수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보통 매출액의 2,3%에 머물던 로열티가 2,3년전부터는 4,5%수준까지
높아졌다.

물질특허를 갖고 있는 외국기업들이 국내기업간 신제품도입경쟁을 유발
시키면서 로열티상승을 유도한 것이다.

그나마 그동안은 외국기업이 한국업체에 라이센스를 주고 파는 형태였지만
국내시장규모가 커지고 유통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직접 제조하거나 팔겠다고
나서는 사례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외형은 물론이고 기술력에서도 국내제약업체들보다 앞서는 외국제약업체들
과 열린 시장에서 싸워야 하는 일도 힘겨운 도전이다.

보통 산업의 국제경쟁력은 가격을 중심으로 가격경쟁력과 비가격경쟁력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제약산업은 특수하게 가격등의 요인보다도 신약개발에 관련된 기술
개발력이 경쟁력을 결정한다.

이와 관련, 아직도 국내에는 자체개발한 신약이 단 하나도 없다.

국내에서 팔리는 의약품은 대개 외국기업이 물질특허를 갖고 있는 것을
로열티를 주고 만들어 내는 것이거나 오래전에 만들어 특허권이 만료된
의약품을 경쟁적으로 베껴낸 이른바 미투(me too)제품들이다.

복제품이 원본과 경쟁해서 이겨낼 수는 없다.

따라서 신약이 있어야만 경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하나의 신약을 개발해내기 위해선 평균 10년 걸리고 비용은
1천억원가까이 든다고 한다.

기업존립차원에서 신약개발에 나서기는 하지만 거의 사운을 걸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