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제네바회담에서 "구체적 일정"을 합의함에 따라 지난해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이후 세계적 관심이 모아졌던 북한
핵문제는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셈이 됐다.

이번 회담으로 북한과 미국이 북한핵문제가 해결되고 정치,경제관계가
정상화되는 단계적 시간표를 확보한 때문이다.

3주간에 걸쳐 진행된 이번 회담은 지리한 줄다리기의 연속이었다.

한국형 경수로와 특별사찰이 가장 큰 이슈였고 양측은 첨예한 공방을
계속했다.

결과적으로는 양측이 명분과 실리를 주고 받는 상황으로 회담은 마무리
됐다.

이번 회담의 결과는 "한국형 경수로"와 "특별사찰연기"로 압축된다.

노형선택권을 강하게 주장했던 북한은 "미국에 경수로 문제를 일임"함
으로써 한국형 경수로를 사실상 수용했다.

그 대신 북한은 "선특별사찰 후경수로지원"이라는 한미양국의 일관된
입장을 경수로 주부품 반입 전까지 양보받는 성과를 얻은 것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핵문제에 언제까지 매달릴 수 없었고 북한으로서도
이 정도의 합의는 핵카드로서 최대한의 효과를 가져왔다고 판단한 듯 하다.

이번 회담결과가 그 조건으로 남북대화를 사실상 포함하고 있고 정부도
그간 고수해왔던 핵-경협 연계방침을 완화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어 그간 경색국면을 면치 못했던 남북관계는 어느 정도 해빙분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담타결로 가장 곤혹스러워 진 것은 다름아닌 우리 정부다.

한미간의 공조는 확고하며 북한의 과거핵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북.미간에 어떤 합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수시로 국민들에게 강조해왔던
정부가 국민들을 설득할 준거를 잃어버린 것이다.

과거핵 규명없이 우리가 경수로지원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북한의 핵개발을
위해 우리가 돈을 대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논리로 정부의 북한 핵
정책 부재를 질타할 국민적 여론이 비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런 마당에 우리가 왜 재정부담을 하느냐는 비판적 시각의 팽배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같은 상황때문에 외교적 노력을 경주했지만 회담타결에 일차적
목표를 둔 워싱턴이 당초의 한미합의를 파기한 결과가 된 것이다.

이같은 상황전개는 한미관계를 상당히 경색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정부의 향후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 양승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