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사. 연간 매출이 22억달러가 넘는 유럽 제1의 휴대용 전화기메이커
이다.

세계적으로도 모토로라를 제외하면 이분야에서는 이제 최강자라고 자타가
공인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그 이름이 그리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국내 휴대용
전화기 시장기반이 형성되지 않은 탓이다. 그렇지만 멀지않아 국내 휴대용
전화기시장에서도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북유럽의 자그마한 나라인 핀란드에 기반을 둔 이기업이 내로라하는 세계
적인 전자.통신업체들을 제치고 휴대용전화기 시장에 군림하는 업체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첨단제품의 기술개발
방향을 제대로 예측할수 있는 경영진과 설정된 목표를 향해 신속하게 사력
을 집중시킬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때문이라 할수 있다.

노키아가 원래부터 통신업체였던 것은 아니다. 이회사는 1백29년전에
설립됐다. 당시에는 제지.펄프 생산업체였다.

이후 주변 여건이나 시장상황에 따라 전기케이블 고무장화등 잡다한 품목을
부수적으로 생산하기도 했다. 통신부문에 손대기 시작한 것은 겨우 10여년에
불과하다.지난 80년대초 사내에 전화기사업부를 갖고 있던 것이 휴대용 통신
사업의 시작으로 휴대용전화기는 81년부터 생산에 나섰다.

노키아사 통신사업의 출발은 결코 순탄한 것이라고는 할수 없다. 국내
시장규모가 너무도 빈약해 마음놓고 장사할수 있는 안마당이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던 때문이다. 따라서 노키아는 시작부터 수출로
승부를 걸었다. 수출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이 아니라 독자상표로
시작했다.

유럽은 물론 미국시장도 마찬가지로 개척,성공을 거뒀다. 애초부터
세계화를 지향,불리한 여건을 오히려 기업성장의 밑거름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노키아가 통신부문의 후발주자이면서도 휴대용전화기에 일찍부터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지형적인 요인이 한몫을 했다. 북유럽국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나라도 북부지방은 인구밀도가 희박,휴대용 전화기의 필요성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높은 곳중의 하나였다. 현재 북유럽지역 국가들의
휴대용 전화기 보급률은 거의 10%에 달해 정보화의 첨단을 달린다는 미국의
5%보다 2배나 높다. 또 영국에 비해서는 4배,프랑스보다는 10배나 많다.
그결과 요즘은 헬싱키 학생들의 경우 친구네 아파트로 놀러갈 때 휴대용
전화기를 들고 가는게 예사로운 일이 됐다.

노키아의 성공을 가능케한 기업내적인 요소로는 경영진,특히 현재
최고경영자인 요르마 올리아사장의 공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89년 카리 카이라모사장이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한뒤 경영을 맡은
그가 오늘날의 노키아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카이라모 전사장은 올리아사장에게 빚더미의 회사만을 남겨준 꼴이었다.
80년대들면서 카이라모사장은 제지.펄프회사였던 노키아의 업종다양화에
나서 컴퓨터 TV등 가전분야의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유럽의 경기는
내리막길로 들어서 노키아는 심한 난관에 부딪쳤다.

올리아사장은 경영권을 떠맡은 뒤 새로운 시장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에 사운을 걸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는 다방면에 경험이
있는 40대로 경영진을 구성했다. 이후 그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영국
ICL에 새로 시작한 컴퓨터사업은 물론 모체인 제지.펄프분야등도 팔아넘겨
자금을 마련,휴대용 전화기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만성적으로 적자를 내고 있는 독일의 브라운관공장도
팔기로 결정,원매자를 찾는등 고질병 치유에 주력하고 있다.

휴대용 전화기부문에서의 노키아의 성공은 첨단제품 마케팅에서의
핵심요소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일부에서는
이런 노키아의 앞날을 불안스럽게 쳐다보는 눈길도 있으나 올리아사장은
이런류의 우려를 일축한다.

그는 노키아가 시장상황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능력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 앞으로도 급성장 가도를 달릴
것이라고 자신한다.

<김현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