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정만호특파원]제네바에서 벌어진 만12일간의 쌀개방협상은 험난
했던 역정만큼이나 많은 뒷얘기를 남겼다. 모든"협상"이 다 그렇듯이 이번
협상도 표면으로 노출된 장관급회의의 이면에는 긴박감 넘치는 실무자급
간의 막후협상이 벌어졌고 보도진과 상대방에게 숨겨진 카드를 들키지
않으려는 스릴 넘치는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그런가하면 맘에드는 협상파트너와 대세를 마무리 짓기위해 일부러 시간을
끌기도 했고 경쟁국이 지나치게 좋은 조건을 얻지 못하도록 다른 나라의
협상과정을 외부로 흘리는등 첩보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한미간 쌀협상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일본의 직.간접적인 견제가
끊임없이 시도돼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일본은 한미간 협상이 본격화되면서부터 미국측에 대해 "지나치게
불평등한 결과는 수용할수 없다"며 만일 한국에 과도한 특혜를 줄 경우
공산품이나 서비스 반덤핑분야등의 협상 진행에 차질이 따를것이라는
경고를 계속 보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Quad(주요4개국)회의 참석차 지난11일 제네바에온 하타일본외상은
미키 캔터 미무역대표부대표와 에스피 미농무장관을 접촉해 일본국내의
여론을 전하고 "한국과 일본의 조건이 객관적으로 비교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력히 제기했다고.

한미간 협상이 끝나 각국 수석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다른나라가 얻어낸 협상결과를 깎아 낼수는 없다"는 국제협상원칙을
무시하고 수석회의전 소그룹회의 소집을 요구하는등 막판까지 다리를
걸고나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쌀의 최소시장 개방폭을 1~4%로 하고 관세화유예기간을 10년으로
정한것은 지난 10일께 였다고. 에스피 미농무장관및 미키캔터
미무역대표와 모두 4차례 회동이 있은뒤 이들이 미국으로 귀국,본국에
있는동안 서울~워싱턴~제네바를 연결하는 핫라인을 통해 골격이 짜여졌다는
후문이다.

허장관과 카운터파트가 될 이들 장관이 현지를 떠나있어 보도진이나
다른나라는 골격확정사실을 알 턱이 없었고 허장관도 계속 연막전술을
펴 국내 신문들은 까맣게 모른채 지켜보기만 했던것.

하지만 9일오후 느닷없이 소집된 한미 차관보급 전체회의에서 "쌀문제는
장관급회의로 미루자"고 한것이 이미 양국 최고위층간의 접촉이 시작됐다는
신호였으며 10일과 11일 분야별 협상이 급진전 될수있었던 것도 쌀에서
기본적인 원칙을 정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농산물 문제를 "패키지"로 다룬 마지막 실무협상인 12일밤 철야협상은
실은 쇠고기의 쿼터문제가 주의제였음이 확인됐다.

쌀문제는 진작에 끝나 쇠고기에서 한국측이 양보키로 했으나 우리측이
난색을 표시해 실무협상이 길어졌다는 것.

미국측은 쌀쪽에서 한국을 "double special"(일본에 비해 두배로 특별)
하게 대우해준 만큼 쇠고기에선 UR협상이전의 예정대로 오는 99년부터
시장을 개방하고 그 이전엔 한국 수입쇠고기중 미국 쇠고기 수입쿼터를
대폭 늘리라고 요구했다는 얘기.

그러나 한국측이 완전개방시기를 5년더 연장토록 요구,입씨름이 길어졌고
새벽4시께야 개방연장기간을 줄이되 대미쿼터를 상당폭 확대하는 선에서
가닥이 잡힌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새벽5시30분까지 협상이 이어졌으나
마지막 1시간30분은 조문정리등을 위한 마무리과정이었음이 드러났다.

<>.우리나라가 협상과정에서 가장 붙들고 싶어했던 파트너는 에스피
미농무장관이었다고.

허장관을 포함해 대표단 모두가 그를 "인자한 사람" "보기드물게 진지하고
진실한 인물"등으로 호평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데 협상과정에서 우리측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상당한 부분에 공감을 표했다는것. 쌀문제를 결정할
실질적인 권한이 에스피장관에게 있기도 했지만 우리측은 "설명을
잘들어주는"그와의 협상을 많이 갖기위해 지난4일 오전 한차례만 잡혀있던
회담을 오후에도 갖자고 간곡히 부탁, 오후회의를 속개하며 진전을 보게
됐다고.

반면 7일 열린 미키캔터대표와 허장관의 회동은 불과 25분만에 회의가
끝나기도 했지만 캔터대표가 "이런 얘길하려고 나를 브뤼셀에서 제네바까지
불러들였느냐"며 귀찮은 표정을 지어 매우 불쾌한 인상을 남겼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