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어떻게 보면 마치 농부가 내일의 수확을 위해 씨앗을 뿌리듯이
추억의 씨앗을 뿌려가면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즐거움과 괴로움,행복과 불행. 그 추억의 씨앗들 모두가 한 인간이
그의 인격이나 인생을 형성해 가는데 밑거름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수많은 추억들 가운데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만큼 평생을
지배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가까운 구름 뒤에/가려진 태양이/먼 들판을
환히 비추듯/추억은 먼 과거를 빛내준다"는 H W 롱펠로의 시어처럼 과거를
소중한 것으로 되돌려줄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풍요롭게 만든다. 그
어떤 교과과정의 교육 못지않게 인생을 감미롭게하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 옛날 어린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을 굳이 더듬어 본다면 국민학교때의
학예회도 그중의 하나인것 같다. 그때만해도 어느 국민학교에서나
운동회나 소풍 말고도 연례행사로 학예회를 열었었다. 강당이 없어 교실
몇칸을 터 공연장으로 쓴데다 레퍼토리라고해야 동극이나 간단한
사극,합창이나 독창이 고작이었을 정도로 빈약했으나 지역축제로서 그 몫을
다했다. 오늘날과 같이 TV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연극 음악 무용 영화등의
공연이 많지 않았던 때였으니 학예회장은 만원이 될수밖에 없었다. 무대에
선 어린이들은 물론 관람자로서의 어린이들과 주민들의 문화의식을
싹틔워준 가느다란 통로였는가하면 지역주민의 연대의식을 높여주는
끈이기도 했다.

그런 학예회가 어느 샌가 자취를 감추었다. 도시화에 따른 인구집중으로
학교규모가 대형화되고 입시위주의 교육이 극성을 떨면서 학예회의 추억도
시들어 간 것이다. 근간에는 고작해야 학급단위의 행사나 경로잔치의
위문행사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을뿐이다.

그런데 그 학예회가 올2학기부터 국민학교와 중학교에 부활될 모양이다.
교육부가 각 시.도별로 2개교씩 모두 30개의 초.중교를 "문화예술제시행
우수학교"로 지정하여 1년에 1회이상씩 학예회를 열도록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학예회 부활의 의미는 추억만들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문화수준 향상은 물론 예술향수층의 저변확산에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크게
기여할수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