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1단계 무역합의안’ 서명은 세계 경제를 짓눌러 온 악재의 희석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 급격하게 위축된 글로벌 교역에 반등 계기가 마련된 것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들려온 오랜만의 희소식이다.

하지만 합의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안도하기는 이르다. ‘본게임은 지금부터’라는 점도 분명하다. 중국이 농산물·공산품·에너지 등 2000억달러어치를 2년 내 추가 구매하는 대가로 미국은 부과 중인 보복관세를 일부 내리고 추가 관세 부과를 철회한다는 게 합의의 골자다. 문제는 핵심쟁점인 중국의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을 위한 중국 법률 개정 등이 대거 누락됐다는 점이다. 합의 미이행 시 보복관세를 재부과하는 조항도 포함된 탓에 “휴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긴장은 지속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사태가 관세·무역전쟁이 아니라 ‘21세기 기술패권전쟁’이라는 사실도 되새겨야 한다. 중국은 ‘제조 2025’를 통한 ‘기술굴기’를 꿈꾸고, 미국은 패권 도전을 용납할 수 없다며 노골적 견제에 나선 것이 대치의 본질이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금과옥조를 흔들면서까지 압박에 나서고 있어 곧 시작될 2단계 협상은 벌써부터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한국은 중국 ‘제조 2025’전략에 가장 크게 영향받는 나라로 꼽힌다. 중국이 겨냥하는 ‘스마트 제조업’이 우리 경제의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위기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불러 미국이 주도하는 ‘화웨이 제재’ 불참을 압박했을 때 정부는 “민간기업 문제에 개입하기 어렵다”며 방관했다. 중국 배터리업체들은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전통 강자인 한국 업체들을 따돌렸다. 2단계 미·중 무역협상에서 본격화될 기술냉전(tech cold war)에 지금부터라도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