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국회의원 총선거를 90일 앞두고 각 당이 총선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지난 1년 내내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극한 대치했던 여야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공약 경쟁에 본격 돌입한 것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호 공약으로 공공 와이파이를 전국으로 확대해 ‘데이터 0원 시대’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모바일 데이터 소비가 많은 2030세대를 겨냥해 통신비 절감 등 생활밀착형 공약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의도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재정건전성 강화, 탈원전 폐기, 노동시장 개혁 등 경제공약을 1호로 내놨다. ‘규제와 추락의 절망경제에서 자유와 공정의 희망경제로’라는 슬로건으로 정권심판론에 불을 지피겠다는 복안이다. 공약 명칭도 ‘희망경제 공약’이다. 어제는 2호 공약으로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 부동산 공약을 내놨다.

선거 승리가 최대 목표인 정당 속성상 유권자에게 듣기 좋은 말부터 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양대 정당의 공약에 ‘미래’가 안 보인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국정운영을 책임져야 할 민주당부터 1호 공약으로 ‘공짜’를 내세워 선거 포퓰리즘에 불을 지폈다는 점은 특히 실망스럽다. 가장 절실한 게 공짜 와이파이인지 묻고 싶다. 군소정당들이 책임지지도 못할 선심공약을 남발하는 판에, 여당까지 가세하면 총선은 제동장치 없는 ‘퍼주기 폭주기관차’로 치닫게 될 것이다.

한국당은 야당으로서 한계가 있겠지만, ‘희망공약’이라고 내놓은 게 “막겠다” “없애겠다”뿐인 것은 유감이다. 수권정당을 자부한다면 국가미래를 설계하는 비전과 ‘희망의 구상’부터 내놔야 하지 않을까. “미래세대의 빚더미 폭탄을 제거하겠다”는 명분은 수긍할 만하지만, ‘부정과 반대’만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는 사실도 성찰해야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경제활력 저하, 지역경제 붕괴, 청년 취업절벽 등으로 사방이 꽉 막혀 있다. 이런 난제들을 풀지 못하고선 나라의 미래도, 개인의 앞날도 기약할 수 없음을 누구나 절감한다. 그렇기에 새로 구성될 21대 국회만큼은 구태를 떨쳐내고 미래지향적 정치를 펴기를 학수고대하는 국민이 많다. 하지만 선거에 임하는 정치권의 눈높이는 과거 3류, 4류 소리를 듣던 수준에서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세계 각국이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파격적으로 규제를 풀고, 혁신을 장려하고, 기업가 정신을 이끌어내는 데 혈안이다. 최근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 다녀온 기업인들은 한목소리로 “이대로는 안 된다”고 절박한 우려를 쏟아낸다. 국민과 기업은 위기감을 토로하는데 정치인들은 외딴 섬나라, 그것도 20세기를 사는 듯이 행동한다. 왜 미국 중국보다 더 혁신적이고 활력 넘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생각 못하는가.

정치가 국익보다 정파 이익이 우선이고, 미래보다 당장 한줌의 표에 골몰해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그로 인한 충격과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다가올 총선에서 미래에 눈 감은 정치인을 유권자들이 반드시 심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