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 좌절한 20대 편의점 ‘알바생’의 고민을 들어보라.”

전문가들은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보수 정당들에 “회생의 기회는 분명히 존재한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특히 고용 실패를 파고들면서 민생을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보수를 지탱해온 선거의 3대 원칙이 깨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보수를 지켜온 △지역주의 △친미반북 △산업화라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선거판 보수 승리공식 '지역주의·親美反北·산업화' 깨졌다
깨진 보수의 선거 승리 공식

이번 지방선거에서 울산은 시장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 5곳을 모두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 여당에선 ‘실정(失政)에 대한 분노’를 첫 번째 승리 요인으로 꼽고 있다. 조선업 침체의 책임을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지난 두 차례의 ‘보수 정부’에 물었다는 지적이다.

거제도 마찬가지다. 아주동에 거주하며 조선소에서 24년째 근무 중인 김모씨는 “월급이 거의 반으로 줄어든 지가 벌써 2~3년째”라며 “대통령이 거제 출신이고, 여기에 민주당에서 시장까지 나오면 뭔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과실을 자양분 삼았던 보수의 선거 공식이 깨지고 있다는 얘기다. ‘조국근대화’란 이름으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초석을 놓은 구미에서조차 첫 민주당 시장이 배출됐다.

지역주의의 영향력도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 민주당만 해도 추미애 당대표가 대구 출신이다.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자도 영남이 고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 내 국회의원 중에서 호남과 영남 출신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포항의 한 시민은 “부모님 세대에선 ‘호남당’은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던 터라 포항에선 과메기가 나와도 당선된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번 선거에 나온 민주당 후보자 대부분이 같은 지역 출신으로 거부감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보수에 아직 기회는 있다”

각계 전문가들은 한국의 보수가 재건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당은 이제 기존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개혁파가 돼야 한다”며 “엄밀하게 말하자면 민주당이 우파고, 한국당은 좌파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오리지널스》의 저자인 애덤 그랜트는 이와 관련해 “기존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의제를 혁신하고, 시대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며 “참신함과 진정성이 생존의 관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블록체인 전문가인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산업에 대한 비전을 보수가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 블록체인과 같은 미래형 금융혁명 분야만 해도 현 정부는 ‘금융질서 교란’을 이유로 성장의 씨앗을 말리고 있다. 적폐 프레임(틀)으로 성공한 진보 진영에 대항할 키워드로 ‘미래’를 선점하라는 얘기다.

정치 전문가들은 보수 민심을 좀 더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민주당으로 돌아섰거나 투표를 포기한 ‘샤이 보수’들의 표심은 한국의 보수당이 하기에 따라 언제든 되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김태민 씨(58·사업)는 “국정농단 사태에 너무 실망해 민주당을 찍긴 했지만 기업인들 사이에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부작용이 어떨지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고 했다.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은 “결국은 민생이 향후 1~2년의 민심을 결정할 것”이라며 “물가와 일자리,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과 부동산 등 4개의 민생 지표가 악화되면 현 정부 심판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부산=김태현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