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부산 남구에 있는 한 주점. 만취한 손님이 계산대로 다가오자 종업원 A씨(31)는 주머니에서 성냥갑 크기의 휴대용 기기를 꺼냈다. 기기에 부착된 판독기에다 손님에게서 건네받은 신용카드를 몰래 긁었다. 기기에는 결제에 필요한 모든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복제됐다. 이후 반 년간 A씨는 생활비가 모자랄 때마다 복제한 카드를 주점과 마트 등에서 사용했다. 추적을 막기 위해 680만원을 62차례로 나눠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20만원짜리 복제기로 1초 만에 위조카드 '뚝딱'
A씨의 감쪽 같은 범행은 올해 초 카드 사용 내역을 꼼꼼히 확인한 피해자가 경찰에 진정서를 낸 뒤에야 덜미가 잡혔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19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카드 한 장을 복제하는 데 불과 1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손쉬운 카드 복제…단속도 유명무실

A씨가 사용한 카드 복제기는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카드 복제기는 물론 개당 980원짜리 공(空)카드, 카드사 로고 인쇄기, 카드번호 및 영문 이름을 새겨넣는 ‘엠보싱기’ 등까지 묶어 20만~3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누구보다 친절하게 이용법을 설명해주겠다”며 판매자끼리 경쟁이 붙기도 한다. 모두 불법 행위지만 주로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에서 거래되다 보니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위조에 필요한 사용자 정보만 따로 판매하기도 한다. 카드 명의자의 이름과 카드번호, 유효기간, 비밀번호, CVC(카드 보안코드) 등이 건당 2만원씩 25건 묶음 단위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환경 탓에 관련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경찰 등에 따르면 신용카드 위조 신고 건수는 매년 1만50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위조한 신용카드로 제주도에서 7000만원대 ‘명품 쇼핑’을 즐기다 지난달 초 적발된 중국인 3인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위조 어려운 IC카드 보급 더뎌

‘카드를 긁는’ 방식의 마그네틱 카드는 암호화 과정 없이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에 위·변조가 쉽다. 대부분 카드 도용 사고가 마그네틱 카드에서 발생하는 이유다. 반면 신용카드에 집적회로(IC) 칩을 내장한 IC카드는 주요 데이터를 암호화해 저장하므로 보안성이 높다. 관련 범죄가 빈발하자 정부는 2015년 7월 여신전문금융업법을 개정해 가맹점이 IC 단말기를 의무 설치하도록 했다. 3년의 유예기간은 오는 7월이면 끝난다. IC카드와 마그네틱 방식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혼합형 카드도 널리 보급됐다.

문제는 정작 IC카드를 읽을 수 있는 카드 단말기 보급이 더디다는 것. 법 시행을 불과 반 년 앞둔 지난 1월 기준 IC 단말기 전환율은 71.1%에 그쳤다. IC칩을 내장한 혼합형 카드라도 마그네틱 방식을 통하면 똑같이 정보를 빼낼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위조 카드 범죄의 위험에도 교체 비용과 기존 계약기간을 이유로 ‘나중에 교체하겠다’는 가맹점이 많다”고 전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지만 카드사와 결제대행업자(VAN), 가맹점주 등 관련 주체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IC 결제가 불가능한 마그네틱 전용 카드가 여전히 남아 있는 데다 IC 카드도 표면이 손상돼 잘 읽히지 않는 사례가 많다”며 “7월에 가서 막판 교체 수요가 급증할 경우 적잖은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IC카드

integrated circuit card. 마그네틱카드의 위·변조 위험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차세대 결제수단이다. 카드 앞면에 있는 IC칩(크기 약 1㎠)에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메모리 등이 내장돼 있다. 신용카드는 물론 신분증, 운전면허증으로도 쓸 수 있어 ‘스마트 카드’로 불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