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청와대 앞길이 개방된 뒤 가게에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집회 참여자들만 몰립니다.”

수년 전부터 서울 효자동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는 지난 반년을 회고하며 ‘악몽 같은 시간’이라고 했다. 박씨는 “행진이 있는 날에는 손님이 아예 오지 않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가 얘기하는 동안에도 시위대의 고함소리가 가게 안까지 들려왔다.

지난 6월26일 문재인 대통령이 50년 만의 청와대 앞길 개방을 지시한 뒤 조용하던 청운동은 ‘시위 명소’가 됐다. 주민들은 밤낮으로 이어지는 집회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시위대가 손님을 내쫓으며 폐업을 고려하는 중소상인들도 속출하고 있다. 주민 이희일 씨(64)는 “경찰이 아예 시위대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도 든다”며 “몇 달 만에 동네가 엉망이 됐다”고 했다.
'청와대 앞길 개방' 6개월… 동네가 '엉망'이 됐다
시위대 10배 이상 급증… 고사하는 상인들

청와대 앞길이 개방되기 전인 5월 한 달 경찰에 신고된 청운동 인근 집회는 22건이었다. 개방 이후인 7월에는 49건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경찰 집계는 같은 시위대가 참여하는 장기 집회를 1건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실제 열린 집회는 훨씬 많다. 신고 의무가 없어 기록되지 않은 1인 시위까지 포함하면 10배 이상 늘었다는 게 주민 설명이다.

시위가 늘면서 동네 중소상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가두행진이 벌어져 교통이 통제되면 손님이 급감해 매출이 반 토막 난다는 게 상인들 설명이다. 청운동주민센터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심모씨(59)는 “이 지역 사람들은 시위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촛불집회 당시는 교통통제가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일말의 기대조차 없다”고 하소연했다.

찾아오는 시위대는 매출을 늘리기는커녕 민폐만 끼친다는 게 상인들의 토로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65)는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개방한다고 해서 상권이 살아날 수도 있겠다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며 “집회 참가자들은 보통 식사를 미리 하고 오고, 경찰들은 도시락을 싸 온다”고 했다. 오히려 가게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화장실을 이용하는 집회 참가자들이나 골목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손님이 줄었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반대 시위까지 열었지만…

‘시위 리스크’는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인근 음식점 사장인 최모씨(52)는 “상가 시세도 많이 떨어졌고 임대나 매물이 나와도 문의가 끊겼다”며 한숨을 쉬었다.

집회로 극심한 피해를 겪던 주민들은 ‘청운·효자동 집회 및 시위 금지 주민대책위원회’를 설립해 지난 8월17일에는 ‘집회를 자제해달라’는 집회까지 열었다. 석 달 만인 지난 11일 경찰청이 소음전광판, 데모 자제 안내판 등을 설치해준다고 약속하는 등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주민들은 체감상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엉뚱한 주장도 많아 혼란이 더하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는 ‘사이비종교에 빼앗긴 딸을 찾아달라’는 등 대통령이 해결해주기 힘든 민원성 1인 시위가 빗발친다. 몸매가 다 드러나는 원더우먼 복장을 하고 “라엘리안 교주 입국을 허용하라”고 적은 피켓을 흔드는 중년 여성 등 ‘황당 시위’도 허다하다.

소통 앞세운 시위대의 일방적인 강요

주민들은 왜 하필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음식점 종업원 김모씨(41)는 “문 대통령이 약자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청와대 앞으로 시위대가 몰려온다”며 “대통령이 민원 들어주는 사람도 아닌데 해당 정부 부처 앞에서 시위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소통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일방적인 주장을 쏟아내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강요이자 자기모순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회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들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자신의 사정을 알아줬으면 해서 찾아왔더라도 적절한 시위 방식이나 공간을 찾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전격적으로 보장된 만큼 거기에 걸맞은 책임있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성수영/노유정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