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미국 경제의 '회복탄력성'이 주는 교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근원지였던 미국은 위기 직후 1년 만에 곧바로 회복하기 시작하더니 올해까지 9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해 역사상 최장기 호황에 근접하고 있다. 이번 4분기에는 성장률이 무려 4%에 육박하고 법인세의 대폭 인하도 가시화되고 있다. 실업률도 10%대에서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4.1%로 내려왔다. 구직자가 거의 모두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완전고용에 이르러 경제학자들이 꿈꾸는 ‘자연 실업률’에 도달한 셈이다.

한국의 13배가 넘는 거대한 경제가 이렇게 높은 성장률을 실현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성장 및 고용이 아니라 바로 미국 경제의 엄청난 ‘회복탄력성’이다. 우선 일자리부터 살펴보자.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008년 2월부터 2년 동안 미국은 비농업부문에서 870만 개의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경제가 회복되면서 2010년 3월부터 7년 동안 그 두 배에 달하는 1728만 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됐다.

비록 제조업에서는 45%밖에 되찾지 못했지만 서비스부문에서는 무려 3.4배의 고용이 창출됐다. 이 기간 엄청난 구조조정과 함께 신사업이 급속히 확대되며 가파른 V자형의 회복탄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경제의 이 놀라운 회복탄력성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정부의 막대한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과 달리 미국 경제가 높은 회복탄력성을 보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시장의 유연성이다. 미국 기업은 실적이 나빠지면 인력은 물론 사업 규모 감축과 신사업 진출 등을 신속하게 단행한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사업재편 등을 통해 생존전략을 마련하고 지속성장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전략이다. 물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자칫 대량실업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그러나 실증적 경험은 구조조정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기업도 생존할 수 있고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통적으로 노동시장이 경직된 유럽은 시장의 유연성이 높은 미국보다 실업률이 높고 회복탄력성도 약하다. 시장의 경직성은 개인의 고용 안정성을 높여줄 수 있지만, 오히려 나라 전체의 일자리에는 악영향을 미치는 ‘구성의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더불어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만 경제의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

둘째는 파괴적인 혁신과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기업 생태계로, 이것이 미국 경제의 회복탄력성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 벤처기업의 창업과 매각, 분사, 기술거래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장이 작동한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디어와 기술만으로도 창업이 가능하고, M&A와 기업공개(IPO) 등을 거쳐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같은 거대기업이 탄생한다. 그런 꿈을 갖고 있는 수많은 작은 기업이 회복탄력성의 바탕이 된다.

셋째, 미국 경제를 견인하는 또 하나의 동력은 도시의 시장친화적인 경쟁에서 비롯된다. 지방 정부는 자율적으로 투자와 사업 환경 개선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최근 아마존 제2 본사의 설립과정에서도 무려 238개 도시가 유치신청을 했다니, 지방정부의 시장친화적 경쟁은 어느 나라와도 비견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결과 도시를 중심으로 산업의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경기가 부침(浮沈)할 때마다 진입과 퇴출은 물론 새로운 창업을 북돋워 회복탄력성을 높여준다.

경제는 항상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변동성이 크다. 특히 글로벌 경제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과 불황이 수시로 엄습한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강한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 정책도 민간의 성장 지향적 경제활동이 스스로 활성화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주력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나 혁신주도의 성장도 모두 회복탄력성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하지 않겠는가.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전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