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본 가전업체 파나소닉은 전국 주요 대리점의 ‘후계자 찾기’ 운동에 나섰다. 대리점주 친척이나 인근 유사 업종 종사자를 소개해 주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파나소닉 대리점주 평균 연령이 63세에 달하고, 자사 대리점의 30% 가까운 2500개 점포가 후계자를 구하지 못한 실태가 드러나면서 무더기 폐업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전자제품 소매 대리점뿐 아니라 일본 경제의 근간이라는 지방 중소기업에선 고령의 경영자 뒤를 이어 기업을 이끌 후계자를 구하지 못해 ‘흑자 폐업’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서둘러 기업 승계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나선 이유다. 이 같은 규제 완화 움직임에 미국, 독일 등 다른 선진국도 잇따라 동참하고 있다.
가업상속 지원 나선 선진국들… 중소기업 폐업 막아 일자리 지킨다
선진 제조업 국가 ‘후계자 대란’

중소기업 상속 문제가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핵심 정책과제로 떠올랐다. 경제 성장기를 주도했던 ‘베이비붐 세대(미국의 경우 1946~1965년 출생)’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대거 산업현장에서 빠지면서 이들이 일군 핵심 산업시설들이 후계자를 구하지 못해 방치되거나 사라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인구 감소가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일본이 가장 심각하다. 일본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1999~2015년 15년간 일본에서 중소기업 수는 약 100만 개 감소했다. 반면 최근 20년간 중소기업 경영자 평균 연령은 47세(1995년)에서 66세(2015년)로 높아졌다. 폐업 기업의 상당수는 기존 경영자가 고령으로 은퇴한 데 따른 것이었다. 경제산업성은 일본 휴·폐업 기업 중 70세 이상 경영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33.4%에서 2016년 47.7%로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휴·폐업 기업의 절대 다수인 82.4%는 경영자 연령이 60세 이상이었다.

‘후계자 구인난’에 따른 강제 폐업이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인구의 14.05%를 차지하는 60대(1780만 명)가 수년 안에 대거 은퇴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제산업성은 경영자가 60세 이상이면서 후계자가 없는 중소기업을 127만여 개로 추산했다. 일본 전체 기업의 30%가량이 경영 승계가 단절돼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설명이다.

상속 활성화로 산업 ‘맥 잇기’

일본과 함께 대표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KfW리서치가 한 조사 결과를 보면 독일에서 55세 이상 경영자 비율은 2002년 20%에서 2014년 35%로 뛰었다. 중소기업 중 경영권이 이전된 비율도 2014년 14%(53만 개사)에서 2016년 17%(62만 개사)로 높아졌다. 조사 대상 중소기업의 42%가 향후 3년 내에 경영권 승계가 필요한 상태였다. 하지만 중소기업 중 경영권 승계 계획을 갖춘 기업은 승계 예정 기업의 22%에 불과했다.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주요 선진국은 경쟁적으로 기업 경영권 상속 관련 규제를 완화해 산업 경쟁력의 ‘맥’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일본 정부·여당은 중소기업의 원만한 세대교체를 위해 가업 승계 시 세금우대를 확대하는 방안을 향후 10년간 집중적으로 시행키로 했다. 가업 승계 시 상속주식(비상장 주식 기준)의 3분의 2까지만 적용하던 상속세 유예 혜택을 상속주식 전체로 확대한다. 기존에는 상속세액의 80%까지 유예 대상이었지만 이를 더 높이기로 했다.

예전에는 중소기업 경영권을 넘겨받은 뒤에도 5년간 직원 80% 이상을 고용해야만 상속세 우대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 같은 조건을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친족 이외 경영자가 기업을 승계할 때에는 등록면허세나 부동산 취득세를 경감하는 방안도 고려하기로 했다.

경영자와 후계자 간 매칭을 지원하거나 도시 거주 관리직 직원들이 지방 기업에서도 일할 수 있도록 겸업이나 부업 규정을 완화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종합 지원책으로 일본 정부는 연간 500건 정도에 그치고 있는 사업승계 세제 적용 건수를 연간 2000건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상속세 폐지를 통해 활로를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표방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세제개편안에 상속세 폐지안을 포함하는 등 적극적이다. 미국은 가업상속 대상 기업 지분에 대해 기본공제와 미연방세법상 가업상속 대상 공제의 최대한도를 합산해 상속세를 부과해왔다. 이와 관련,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자유화 확대를 위해 최고세율 40%인 상속세를 2025년까지 폐지한다는 안이 하원을 통과한 상태다.

독일과 영국도 한국에 비해 낮은 기업 규모와 지분율, 피상속인 사업영위기간 규정 등을 통해 폭넓은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운영하면서 중소기업 경쟁력을 이어가고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오형주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