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와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인캐피털컨소시엄이 세계 2위 낸드플래시업체 도시바메모리 지분 51%에 대한 인수 가격으로 1조엔(약 10조원)을 제시했다.
SK하이닉스, 도시바 인수에 10조원 '베팅'…일본 언론 "다크호스 부상"
도시바의 기존 경영진과 일본계 재무적 투자자(FI)를 컨소시엄에 끌어들이겠다는 새로운 인수 조건도 제시했다. 다른 인수 후보보다 인수 가격은 다소 낮지만 회사와 일본 정부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유력한 인수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 인수 구조는

19일 SK하이닉스와 외신 등에 따르면 이날 진행된 도시바메모리 본입찰(2차 입찰)에 SK하이닉스-베인캐피털컨소시엄, 미국의 통신용 반도체기업 브로드컴, 세계 최대 가전위탁생산업체 대만의 훙하이,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컨소시엄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베인컴퍼니 컨소시엄은 베인컴퍼니가 주도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우고 여기에 SK하이닉스가 유한책임투자자(LP)로 참여하는 인수 구조를 제안했다. 인수 가격은 도시바메모리 지분 51% 인수 기준 1조엔이다. SK하이닉스와 베인컴퍼니가 절반씩 분담하는 구조로 전해졌다. 나머지 49% 지분 중 일부는 도시바 경영진, 일본의 재무적 투자자 등이 사들일 수 있는 구조를 제안했다. 여기에 기존 도시바 경영진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MBO(Management Buy Out) 방식도 제시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SK하이닉스 측의 제안은 지난 3월 예비입찰과 비교하면 지분 100% 기준으로 기업 가치 산정가격(2조엔)은 비슷하지만 지분 인수 규모를 절반가량으로 줄인 것이다. SK하이닉스가 부담할 투자금은 당초 거론되던 금액(약 20조원)의 4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일본 기업과 투자자를 끌어들여 한·미·일 연합군을 꾸린 것도 새로운 인수 구조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베인캐피털 측은 일본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와 국책은행인 일본정책투자은행(DBJ) 등 일본 측 투자자를 컨소시엄에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도시바 측의 합작사로 최근 국제중재재판소에 회사 매각 금지를 요청한 웨스턴디지털과도 컨소시엄 구성 또는 전략적 협력을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

남은 변수는

SK하이닉스 측이 제시한 새로운 인수 조건은 매각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들의 엇갈리는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된다. 우선 반도체 기술 유출 등을 이유로 해외 매각을 꺼리는 일본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일본 기업과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또 베인컴퍼니를 인수 주체로 내세운 것은 낸드플래시업계 세계 2위(도시바메모리)와 세계 5위(SK하이닉스) 기업 결합에 따른 따른 독과점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시바와의 합작 계약서를 내세워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웨스턴디지털도 도시바를 대신할 안정적인 투자자(SK하이닉스)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도 “새로운 인수 구조를 통해 하이닉스가 세계 각국의 독과점 심사를 피할 수 있게 됐다”며 “마지막 순간 새로운 유력후보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관건은 인수 가격이다. 도시바 측으로부터 막대한 대출금을 상환받아야 하는 채권단이 더 높은 인수 가격을 써낸 인수 후보기업을 선호할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지분 100% 인수 가격으로 2조2000억엔(약 22조5000억원)을 제시했다. 예비입찰 당시 최고가인 3조엔(약 30조원)을 제시한 훙하이 측의 인수 제안 가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추가 협상 과정에서 SK하이닉스컨소시엄이 인수 가격을 더 높일 가능성도 예측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산케이신문은 “도시바가 이날 입찰에서 2개 인수후보군을 압축한 뒤 6월에 3차 입찰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좌동욱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