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의 관계는 묘하다. 겉으론 협조적 관계다. 검찰은 세종시에 있는 공정위 본부에 업무 협조 차원에서 검사 2명을 파견한다. 공정위·검찰 업무협의회도 주기적으로 열린다.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검찰 내부에선 “공정위와 업무 협조가 잘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공정위대로 “검찰이 공정위의 전문영역을 넘보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런 갈등은 공정위가 경제기획원에서 독립해 힘을 키우기 시작한 1994년 이후 계속됐다.
[공정위-검찰 충돌] 검찰 '공정위 전속고발권'에 태클…'경제검찰'행세 못마땅했나
공정위가 고발해야 검찰 수사

공정위와 검찰 간 해묵은 갈등의 중심에는 전속고발권이 있다. 검찰은 전속고발권에 부정적이다. 행정부처인 공정위가 사법기관처럼 고발권을 독점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검찰 내부에서도 ‘공정위가 1차로 사건을 걸러주는 게 좋다’며 전속고발권에 찬성하는 의견이 없진 않지만 소수의견일 뿐이다.

검찰은 전속고발권 때문에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인지하고도 공정위의 고발 요청만 기다려야 하는 건 문제라는 생각이다. 특히 공정위가 공소 시효를 얼마 안 남기고 고발 요청을 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일 처리 속도에 검찰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담합 사건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지난 27일 현대자동차 납품 업체들의 담합 사건을 형법상 입찰 방해 혐의로 기소하자 공정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전속고발권 때문에 공정거래법이 아니라 형법 조항을 걸어 해당 업체들을 기소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경제 사건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을 공정위에 과시했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부당한 간섭”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를 정치권과 검찰의 ‘부당한 간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도 검찰의 물밑작업 때문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통해 조직 확대, 검사 몸값 상승 등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내부에선 검찰의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가릴 땐 시장지배력 산출, 경쟁상황 분석 등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검찰이나 경찰이 단기간의 경험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2015년 검찰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설립한 공정거래조세조사부(공조부)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공조부는 검찰 내 공정거래 전문 수사 조직이다. 대부분 공정위가 고발한 사건을 수사했지만 최근엔 인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공정위 내부에선 “공정거래법 1차 조사는 공정위가 담당하는데 굳이 검찰이 공조부를 신설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검찰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 공조부 신설 이후 공정위와 검찰의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015년 담합 자진신고(리니언시) 논란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리니언시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고 고발도 면제한다. 조사 협조 공로를 인정해서다.

하지만 검찰은 2015년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리니언시 기업 관계자에 대해서도 수사를 강행했다. 공정위는 당시 “리니언시가 무력화된다”고 반발했고 이후 법무부와 공정위 수뇌부의 합의로 갈등이 봉합된 상태다.

밥그릇 싸움 비판도 나와

공정위와 검찰 간 다툼에 대해 ‘밥그릇 싸움’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검찰이 담합에 대한 독자 수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대선 국면을 기회로 영역을 넓히려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공정거래 관련 전문가는 “전속고발권 폐지 공약이 나오면서 차기 정부에서 검찰과 공정위 간 다툼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정위가 전속고발권 폐지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조사 주도권을 검찰에 뺏길 것을 우려해 ‘폐지 불가’만 외칠 뿐 정작 필요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뒤늦게 전속고발권 폐지 대신 입찰담합 등 고의성이 짙은 불공정행위는 무조건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황정수/김주완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