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과 자영업자 900만여명이 노후 대비를 위해 가입하는 연금저축 납입액에 대한 세액공제를 놓고 ‘이중과세’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연금소득은 연금보험료를 낼 때나 연금을 받을 때 한 번만 세금을 물려야 하는 게 원칙(연금과세 원칙)이다. 하지만 연금저축 공제 방식이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근로소득자 절반가량은 매년 연말정산 과정에서 연금저축에 대해 세금을 덜 돌려받아 결과적으로 중복과세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옛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낸 김용민 인천재능대 회계경영학과 교수는 20일 “연금저축 세액공제는 ‘연금과세 원칙’을 정면 위반하는 것”이라며 “올해 세법 개정 때 연금저축 납입액에 대해 예전처럼 소득공제 방식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밝혔다.
[연금저축 이중과세 논란] 샐러리맨·자영업자 930만명 연금저축에 세금 두 번 낸다?
◆형평성 높이려 공제 방식 변경

연금저축에 대한 공제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건 2014년부터다. 샐러리맨과 자영업자들은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신고를 하면서 2013년까지 연금저축 납입액에 대해 연 400만원 한도로 소득공제(납세자의 소득에서 납입액을 빼주는 방식)를 받았다.

하지만 2013년 말 소득세법이 개정돼 2014년부터 연금저축 납입액(400만원 한도)의 12%만 세액공제해 주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연금저축 납입액을 소득에서 공제하지 않고 과세표준에 포함한 뒤 일정 세율을 곱해 산출세액을 계산하고 여기에서 일정 세금을 깎아 주는 방식이다.

과세당국은 이에 대해 “소득계층 간 과세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소득세율은 소득에 따라 6~38%(법 개정 시점 기준으로 올해부터는 6~40%로 변경됨)의 누진세율이 적용돼 기존 소득공제 방식은 고소득자에게 훨씬 유리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해 400만원의 연금저축을 납입한 경우를 보자. 이를 소득공제해 주면 한계세율(적용되는 최고 세율) 6%인 저소득자는 24만원(400만원×6%)만 세금이 절감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반면 한계세율 38%의 고소득자는 152만원(400만원×38%)의 세금 감소 효과를 본다.

세액공제 방식에선 이런 ‘불평등’이 사라진다. 한계세율이 6%든 38%든 연 400만원의 연금저축 보험료를 낸 사람은 12%인 48만원을 동일하게 세액공제받게 되기 때문이다.

◆“연금과세 원칙에 위반”

세액공제 방식은 이처럼 과세 형평성 원칙에는 부합된다. 하지만 세제당국이 예상하지 못한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연금과세 원칙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조세이론상 연금소득 과세는 ①납입연도과세방식(연금보험료 납입 때 과세, 연금 수령 때 비과세)과 ②수령연도과세방식(보험료 납입 때 비과세, 연금 수령 때 과세) 두 가지 중 하나를 따르는 게 원칙이다. 어느 방식이든 연금소득은 한 번만 과세된다.

소득공제 방식에서는 ②수령연도과세방식이 잘 구현됐다. 소득에서 연금저축 납입액이 공제돼 납입 시점에선 전액 비과세가 됐고 나중에 연금을 받을 때 연금수령액 전액에 대해 과세가 이뤄졌다.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연금저축 납입액 세액공제율(12%)을 초과하는 15% 이상의 한계세율 적용자들은 중복과세를 당할 여지가 생겼다. 가령 38% 한계세율 적용자는 연금저축 납입액이 400만원이더라도 모두 과세표준에 포함돼 일단 152만원(400만원×38%)의 세금이 는다. 이 중 12%인 48만원은 세액공제 받지만 나머지 26%(38%-12%)에 해당하는 104만원은 결국 세금으로 내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해당 납세자가 나중에 연금을 받을 때 연금수령액은 전액 과세된다. 결론적으로 납입 때는 부분 과세, 수령 때는 전액 과세되는 중복과세가 발생하는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5년 소득에 대한 연말정산신고자 1487만8641명(과세표준이 있는 신고자 기준) 중 732만2376명, 종합소득세신고자 548만2678명 중 198만9693명은 한계세율이 15% 이상이었다. 모두 930만명 정도가 연금저축에 가입했다면 크든 작든 중복과세를 당했을 것이란 얘기다. 김 교수는 “세계 주요 국가 중 연금소득 중복과세를 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과거처럼 소득공제 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