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일자리를 차지하는 로봇에 세금을 부과해야 하느냐를 놓고 정치권, 산업계, 학계에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로봇세’를 실직자와 사회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진영과 로봇세는 혁신을 가로막을 뿐이라는 진영이 맞서고 있다.

세계로봇연맹(IFR)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용 로봇의 글로벌 신규 출하량은 2015년 25만4000대로 전년보다 16% 늘었다. 10년 전보다 증가율이 세 배 가까이 높았다. 첨단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서 생산 분야는 물론 서비스 분야로까지 로봇 활용이 급증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로봇세 논쟁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불붙은 로봇세 논쟁…"소득 올리면 세금"vs"혁신엔 과세 말아야"
◆정치권에서 논의 시작된 로봇세

래리 서머스
래리 서머스
로봇세 부과 논의가 시작된 건 지난해 유럽의회에서였다. 메디 델보 의원이 로봇세 도입을 주장하는 입법안을 제출했다. “기업 이익에 로봇이 기여한 비중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로봇에 과세해 사회보장기금을 충당한다는 목적이었다.

이어 지난해 12월 프랑스 집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대통령 후보가 로봇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본소득제도 도입에 필요한 3000억유로를 충당하기 위해 로봇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1월17일 유럽의회가 델보 의원이 제안한 로봇세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 끝에 도입하지 않기로 의결하면서 잠잠해지는 듯했다.

로버트 실러
로버트 실러
로봇세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다. 그는 지난달 17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앞으로 20년간 로봇이 많은 노동자를 대체할 것”이라며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면 자동화 속도를 늦추고 복지기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직 노동자를 노인과 어린이 돌봄 서비스 분야 등에 투입하고 로봇세를 그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게이츠는 “연봉 5만달러를 받는 공장 노동자는 수입에서 소득세와 사회보장부담금을 낸다”며 “로봇이 동일한 일을 하면 동일한 세금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을까

대다수 경제학자는 반발을 쏟아냈다. ‘로봇’의 정의는 무엇이고,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게 맞느냐고 공박했다. 로봇세가 오히려 인간의 혁신 욕구와 혁신 활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6일 “항공기 탑승권 발급 기계나 모바일뱅킹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며 “그렇다고 이런 기술에 과세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로봇은 단순한 자동화설비가 아니라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로봇을 일자리 약탈의 주범으로 몰아 과세할 논리적 근거가 약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위스 로봇 생산회사인 ABB의 울리히 스피어호퍼 최고경영자(CEO)는 “독일 일본 한국은 노동자 1만명당 로봇 300대를 보유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로봇 보급률을 자랑하지만 실업률이 가장 낮다”고 지적했다.

◆“부를 창출한다면 과세해야”

로봇으로 인해 당장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있고, 이에 따른 빈부 격차도 생겨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아테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주 ‘루크’와 소작농 ‘켄’의 사례를 들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켄은 루크에게서 받은 소작료를 바탕으로 정부에 소득세와 사회보장부담금을 내왔다. 그런데 루크는 켄을 로봇 넥서스로 대체하려 한다. 넥서스는 점심도 먹지 않고, 휴일이나 병가도 없이 어떤 날씨에도 더 안전하게 더 많은 곡물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자리를 잃는 켄 대신 루크가 소득세와 사회보장부담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도 22일 “AI 가상비서인 구글 홈이나 아마존 알렉사 때문에 가정부가 일자리를 잃고, 자율주행차 택시회사인 싱가포르의 뉴토노미가 택시기사를 대체하고 있다”며 “일자리가 당장 사라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혁신 덕분에 일자리가 늘어나더라도 “일시적인 소득세 형태로 로봇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이 다른 기술을 배우는 데 필요한 시간을 주기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투자회사 Y콤비네이터의 샘 알트먼 CEO는 “로봇의 능력이 사람을 훨씬 능가할 수 있다”며 “기업에서 로봇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한다면 당연히 세금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아 스미스 뉴욕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혁명 때 방직기에 세금을 매겼다면 지금처럼 옷을 여러 벌 입고 다닐 수 있었을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서머스 교수도 “정부는 혁신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금을 지원하며 혁신을 유도해온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