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무차별적 ‘기업 때리기’ 열풍에 새누리당마저 가세하고 나섰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주말 발표한 당 정책쇄신안에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 처벌 수위를 높이고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진입 규제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업분할명령제를 도입하고 정경유착형 준조세 금지법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대선을 앞두고 야당과 재벌개혁 경쟁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새누리당판 경제민주화인 셈이다. 국회 회기제를 휴기제로 바꾸고 국회의원의 모든 회의 출석 현황을 상시 공개하겠다며 국회 개혁 방안도 내놓았다.

쇄신안을 보면 새누리당이 아직 상황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기업 정책은 야당이 그동안 내놓은 기업 규제안들을 적당히 베낀 것에 불과하다. 국회 개혁 부분은 국회선진화법 등 핵심적인 내용은 빠진 채, 지엽말단적인 것만 건드렸을 뿐이다. 참으로 실망스럽고 안타깝다. 이런 쇄신안으로는 야당과 차별화도 안 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새누리당 지지자들마저 모두 발로 차버리는 꼴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 지금처럼 된 것은 친기업 정책을 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현 정부 초기, 심각한 고민도 없이 경제민주화를 들고나왔다가 갈팡질팡하면서 당 정체성에 혼란이 생긴 탓이 크다. 보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과 가치는 상실한 채 좌편향 포퓰리즘에 빠져들고 말았다. 지도자급이라는 인사 중에도 야당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분당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야당을 따라 좌파 코스프레나 하고 국회개혁 시늉만 한 것을 쇄신안이라고 내놓았으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는 대선 승리는 고사하고 당의 최소한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뿐이다. 새누리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보전 수호하는 진정한 보수 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실하게 찾아나서는 것이다. 지금처럼 이념도 철학도 정체성도 결여한 정당은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 경제를 모르는 자들이 경제도 정치도 망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