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8월3일 슬로바키아 질리나에 있는 기아자동차 유럽 공장을 방문해 생산 차량의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8월3일 슬로바키아 질리나에 있는 기아자동차 유럽 공장을 방문해 생산 차량의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어려운 외부 환경은 이제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다. 끊임없는 혁신만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 현대·기아자동차 해외 법인장 60여명을 소집해 한 말이다. 정 회장은 이날 열린 회의에서 미국 유럽 중국 인도 러시아 등 현대·기아차의 주요 해외 법인장에게서 상반기 판매 실적과 하반기 생산·판매 계획 등을 상세히 보고받았다. 그는 “시장 변화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시스템을 강화해 시장 변화를 먼저 이끄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했다.

정 회장은 해외 현지 시장 상황 점검 강화 및 글로벌 사후서비스(AS) 활성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신차 마케팅, 멕시코와 중국 창저우 공장의 성공적인 가동 등을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정 회장은 이달 초엔 러시아 체코 슬로바키아 등 유럽 생산공장을 돌며 생산과 판매를 독려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이처럼 직접 뛰기 시작한 것은 현대·기아차 판매 실적이 올해 목표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현대·기아차의 올 상반기 국내외 판매대수는 총 385만2070대다.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했다. 내수시장에선 선전했지만 해외시장에서 부진을 겪은 탓이다.

하반기 경영 환경도 녹록지 않다고 보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영향을 받는 유럽 시장과 브라질·러시아 등 신흥 시장, 중동 시장의 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현대차그룹 산하 글로벌경영연구소는 하반기 국내 자동차 판매가 89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8.7%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반기 내수 시장이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올해 연간 판매는 182만대로 전년보다 0.5% 줄어들 전망이다.

현대·기아차는 올 하반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안착과 친환경차·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 확대에 힘을 쏟기로 했다. 우선 제네시스 브랜드 최고급 차량인 G90(국내명 EQ900)과 G80을 미국에서 선보이기로 했다. G90은 중동에서도 출시한다. 국내에선 신형 그랜저를 11월께 조기 출시하는 등 신차 공급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다만 중국 시장에선 공장 건설 속도를 조절할 예정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공급과잉 우려가 있어 중국 4·5공장 가동에 시차를 둘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창저우 4공장(30만대)과 충칭 5공장(30만대)을 각각 올 하반기, 내년 상반기에 완공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와 일렉트릭(미국 유럽), 니로 하이브리드(미국 유럽 중국), K5 하이브리드(미국), K5 플러그인하이브리드(미국 유럽) 등을 주요 지역에 차례로 선보이며 친환경차 라인업도 강화할 계획이다. 정 회장은 “제네시스 G80, G90의 성공적인 미국 론칭을 통해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서 브랜드 입지를 탄탄히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SUV 생산량을 늘리고, 소형 SUV를 주요 지역에 신규 투입한다는 계획도 짰다. 세계 각국 공장에서 투싼, 스포티지 등 SUV 생산 비중을 높여갈 예정이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