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초부터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임시공휴일 지정 등을 통해 내수 부양에 총력을 쏟았다. 3월 소매판매 증가율(전월 대비 4.2%)이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회복 기미도 엿보였다. 재정·통화당국도 자신감을 찾은 듯했다. 2분기 들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발간한 경기 보고서엔 ‘내수 중심 개선’이란 문구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이상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달 소비자심리지수가 석 달 만에 내림세로 돌아섰다는 지표가 나온 데 이어 27일에는 지난 1분기 소비성향이 13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일각에선 기업 구조조정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 소비심리에 충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연구기관들은 단기적인 구조조정 충격을 우려하며 당국에 재정 추가 집행, 기준금리 인하 등의 처방을 주문하고 있다.
지갑 여나 싶었더니…구조조정 여파에 '곡성'
○소비성향 13년 만에 최저

지난 3월 소매판매가 반짝 증가하긴 했지만 1분기 전체를 놓고 보면 소비자들의 지갑은 여전히 꽉 닫힌 상태다.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평균소비성향’(소비지출/처분가능소득×100)은 72.1%로 집계됐다. 1분기 기준으로 관련 통계가 있는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맨 탓에 소비를 찔끔 늘렸다는 얘기다. 1분기 처분가능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1.0% 늘었지만 소비지출은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재부 관계자는 “처분가능소득이 늘었지만 경기 및 소비심리 부진 등의 영향으로 소비지출이 전반적으로 둔화됐다”고 말했다.

○소비심리 석 달 만에 하락

구조조정 불확실성에 소비심리도 움츠러들고 있다. 5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2포인트 떨어진 99로 석 달 만에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을 밑돌면 소비자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심리가 장기평균보다 비관적임을 뜻한다.

조선·해운 구조조정 여파로 대량실업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전반적인 소비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소비자심리지수 연관 지표인 취업기회전망지수(74)가 7년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은 관계자는 “조선·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이슈가 부각되면서 소비자들의 전반적인 경기 인식이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재정 조기 집행 늘리는 정부

정부는 재정을 앞당겨 집행해 어떻게든 꺼져가는 경기 불씨를 살려볼 계획이다. 우선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 계획을 당초 목표 대비 6조6000억원 상향 조정했다. 중앙재정과 지방재정에서 각각 4조1000억원, 2조5000억원의 돈이 당초 계획보다 더 집행될 예정이다.

KDI는 정부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한은엔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김성태 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기 위축과 실업 등 부정적인 파급 효과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추경예산 편성이 필요하다”며 “경기 하방 압력을 줄이기 위해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 이야기는 너무 앞서나가는 것”이라며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에 어떤 내수부양책을 넣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재정 확대, 통화 완화보다는 구조조정을 일관되게 추진해 불확실성을 없애는 게 더 시급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구조조정이 실패해 경제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