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에겐 첫 연주가 생명…일기일회의 자세로 준비"
지난 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레지스 파스퀴에, 백주영, 권혁주와 피아니스트 주하니 라거스펫츠 등이 ‘현을 위한 신포니에타’를 세계 초연했다. 오는 29일에는 서울바로크합주단과 마림바 솔리스트 한문경이 ‘마림바 협주곡’을 예술의전당에서 초연한다. 모두 작곡가 류재준 씨(45·사진)의 곡이다.

류씨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작곡가다. 지난 10월에는 폴란드 정부의 1급 훈장인 ‘글로리아 아르티스’를 받았다. 뛰어난 문화예술가에게 주는 이 훈장은 그의 스승인 폴란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와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 등이 앞서 받았다. 서울 방배동 유중아트센터에서 만난 류씨는 “(훈장 수여는) 과분하다. 더 좋은 곡을 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일단 29일 초연 예정인 마림바 콘체르토 연습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마림바 협주곡은 ‘바이올린 협주곡’ ‘첼로 협주곡’과 달리 다악장으로 이뤄진 곡입니다. 1악장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한 목관악기의 연주 속에 바이올린 합주가 나직하게 응답하다가 마림바 솔로가 등장하죠. 플루트와 마림바가 서정적 도입부를 이루는 2악장, 팀파니와 마림바가 심장 소리처럼 강력한 주제를 제시하는 3악장으로 이어져요.”

동시대 작곡가에겐 작품의 초연이 중요하다. 첫 연주로 곡의 ‘생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곡은 연주 수준이 낮아도 청중이 오케스트라 탓이겠지 해요. 하지만 초연하는 곡이 잘못 연주되면 청중은 곡이 원래 그렇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니 연주자들의 역량과 연습 수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죠.”

그는 차세대 국내 연주자 양성에 정성을 쏟는 걸로 유명하다. 자신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류씨는 “국내에 ‘거장’이 없다”며 “어릴 때부터 콩쿠르 1등, 대학 교수라는 직위를 따는 것 등에 신경을 쓰다 보니 진짜 음악을 사랑하는 연주자가 드물어진 것 같다”고 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크레셴도(점강음)와 모차르트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하는’ 연주자가 없어요. 빠르게 익혀서 따라 연주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호기심이 없는 거죠. 그러다 보니 공부를 안 하게 돼요. 이 공부는 책을 뒤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음악을 정말 사랑해서 다도의 ‘일기일회(一期一會)’처럼 최선을 다해서 평생 단 한 번뿐인 만남을 추구하는 자세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공부죠.”

내년 3월5~6일에는 영국에서 로열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그의 ‘첼로 협주곡’과 ‘마림바 협주곡’ ‘현을 위한 신포니에타’를 녹음한다. 이 음반은 RPO레이블로 발매될 예정이다. 같은 달 12일에는 핀란드 라티 오케스트라가 오코 카무의 지휘로 류재준의 ‘첼로 협주곡’을 무대에 올린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