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11세대 공장 짓겠다는데…8세대에 5년째 멈춰선 한국 LCD
한국의 주력 정보기술(IT) 제품 중 하나인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이 중국 업체에 밀리고 있다. 중국의 대량 생산으로 LCD값은 폭락하고 있다. 중국 업체는 내년부터 한국 업체들이 갖춘 8세대(2200×2500㎜) 라인보다 두 배 가까이 큰 10.5세대(3370×2940㎜) 이상의 패널공장 건설에 나선다. 이 제품이 양산되는 2018년이면 LCD시장의 패권을 중국에 완전히 빼앗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에선 중국의 추격이 이제 막 시작됐지만 LCD에서는 이미 밀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섭게 생산량 늘리는 중국

중국 업체들의 LCD 증설 속도는 빠르다. 무서울 정도다. 업계에서는 올해 말 생산량이 2014년 초의 두 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부터는 더 빨라진다. 중국 최대 LCD업체인 BOE는 최근 세계 최초로 10.5세대를 생산하기 위한 투자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초 착공에 들어가 이르면 2017년 말부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차이나스타(CSOT)도 11세대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한국의 LCD 국내 신규투자는 2010년 이후 끊겼다. LCD시장이 공급과잉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였다. 지난 몇 년간 계속돼온 패널 가격 폭락세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10월 말 패널 가격은 지난 2월보다 40% 가까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중국은 생산을 계속 늘린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BOE 등 중국 업체는 정부 지원에 힘입어 사실상 무이자로 투자비의 60% 이상을 조달한다”며 “인건비도 한국보다 싸 수율(전체 생산량 중 출고 가능한 제품의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만 높여도 한국보다 훨씬 싸게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중국산 패널은 ‘저급’이란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커브드(곡면) 패널 등 최고급품을 제외하면 삼성·LG디스플레이와 차이가 거의 없다. 올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BOE에서 사오는 패널 양을 두 배 이상 늘린 것(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 분석)이 이를 나타낸다.

삼성·LG는 OLED에 집중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3분기 9000억원, LG디스플레이는 3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요인을 따져보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삼성의 실적 개선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많이 사갔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국내 신규투자를 하지 않아 감가상각비 부담도 거의 없다. LG디스플레이도 비슷한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울트라 HD(UHD) 곡면패널 등 고가제품 시장에도 중국 업체가 진입하고 있다”며 “삼성디스플레이 LCD사업부는 최근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국이 2017년부터 10.5세대 라인에서 대형 패널을 쏟아낼 경우 원가 측면에서 한국은 따라갈 수 없다. 8세대 라인에선 유리 한 장에 65인치 세 장을 얻을 수 있지만, 10.5세대에선 여섯 장까지 생산할 수 있어서다.

삼성과 LG도 10세대 이상 투자를 검토했다. 하지만 승산이 없어 투자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OLED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은 스마트폰 태블릿 등에 쓰이는 중소형 패널에, LG는 TV에 쓰이는 대형 패널에 투자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중소형 OLED 쪽에서는 삼성이 세계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대형은 LG 외에 생산하는 업체가 아직 없다.

OLED도 안심할 순 없다. 대만의 에버디스플레이, 일본의 JOLED 등이 중소형 OLED 생산을 시작한 상태다. BOE도 시범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LG 관계자는 “과거 우리는 일본의 뒤를 쫓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였지만 지금은 ‘퍼스트 무버(선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한발 앞선 기술 투자를 통해 특허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윤선/김현석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