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양사 합병을 권유했다는 보도다. 최근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부쩍 강조해온 점을 감안하면 합병의사 타진이나 단순한 권유 차원은 넘어선 것 같다. 합병에 난색을 표하는 두 회사에 대해서는 합병 반대 근거를 사유서 형태로 제출해 달라고까지 요구한 걸 보면 한번 제대로 밀어붙이겠다는 태세다.

해운은 조선·건설·철강·석유화학과 더불어 구조조정이 다급한 대표적 업종이다. 지난달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유화업계에 “업계가 스스로 합병하지 않으면 공멸할 것”이라고 공개적인 경고장을 던지기도 했다. 이번에는 국내 1, 2위 해운회사를 지목했고 구조조정 방안도 합병이라고 분명히 적시했다. 이달 들어 금융위원장 주도로 관계부처 차관들이 함께하는 소위 ‘청와대 서별관회의’(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에서 논의되는 산업 구조조정의 큰 그림에 들어 있는 방안 중 하나일 것이다.

회사마다 수조원의 적자가 쌓여가는 ‘조선 빅3’의 부실문제가 불거진 뒤 구조조정은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이 됐다. 곳곳에 산재한 ‘좀비기업’을 방치한 채로는 노동·금융 등 4대 개혁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적기에 구조조정이 안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관치에 억눌려온 낙후된 금융시스템, ‘배임죄 공포’ 등 부실기업의 퇴로가 미비한 법률시스템, 정치권 개입과 노동계의 저항 등 하나같이 수십년 된 적폐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구실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이 안 되고 있는 근본 원인은 기업 스스로에 있을 것이다. 정부의 간섭을 불러들인 것도 결국은 기업이다. ‘대마불사 신화’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채, 경영의 비전도 창의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위기에 내몰리는 것이다. 관료를 탓하면서 정작 자신도 관료주의에 젖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 지원에나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은 관의 개입을 불러올 뿐이다. 주인 없는 회사에서 노사가 나눠먹기로 공존해온 조직이 대우조선만도 아닐 것이다. 구조조정은 금융 규율에 따른 상시적인 것이어야 한다. 기업들도 좀 더 긴장해야 한다. 비전이 없이는 타율을 부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