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일본 콘덴서 제조업체 여덟 곳을 가격 담합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한다. 조사대상은 파나소닉 산요 후지쓰 등으로 담합 규모가 최대 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생산하는 콘덴서는, 안 들어가는 전자제품이 없을 정도로 널리 쓰인다. 따라서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업체가 입은 피해만도 수백억원으로 추산된다.

8개 업체는 조사대상 기간인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세계 콘덴서 시장의 60%가량을 점유했다. 이 같은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맘대로 조작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특히 한국 부품 소재 업체들이 기술개발에 성공해 경쟁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면 담합으로 가격을 후려쳐 시장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해서 잠재적 경쟁 업체가 도태되면 다시 가격을 올리는 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관련업계에서는 공정위가 조사 중인 콘덴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 제조업이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지만 주요 부품 소재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품 소재의 대일(對日) 의존도는 최근 17~18%선까지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점을 악용, 불공정 거래를 일삼는 일본 업체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기아차에 배기가스 온도 센서, 점화코일, 점화플러그, 베어링 등을 납품하는 일본 업체들이 올초 담합으로 잇달아 공정위 제재를 받기도 했다.

일부 일본 업체들은 아예 한국 업체의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교묘하게 시장에 개입, 초기에 기술개발 의지를 꺾어버리기도 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이 같은 불공정행위는 매우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적발도 쉽지 않다. 이번 콘덴서 담합도 미국과 일본의 경쟁 당국이 이미 조사를 시작해 공정위도 인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정위는 이런 유형의 불공정행위 적발에 좀 더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수출은 한국이, 실익은 일본이 챙겨가는 소위 ‘가마우지 경제’ 신세도 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