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200만원…부담 없이 인테리어 소품 쇼핑하듯 맘에 쏙 드는 그림 산다
직장인 박영빈 씨(32)는 지난 3일 회사가 있는 서울 경복궁 인근의 작은 화랑에서 유화를 하나 샀다. 봄을 맞아 신혼집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동료들은 “와, 부자구나”라며 놀렸지만 실제 가격 부담은 크지 않았다. 폭이 50㎝를 조금 넘는 10호짜리인 데다 젊은 신예 작가의 작품이라 60만원을 넘지 않았다. 박씨는 “평소 회사를 오가는 길에 보고 좋아하게 된 작품이라 집에 두고 싶었다”며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투자 목적으로 산 게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50만~200만원…부담 없이 인테리어 소품 쇼핑하듯 맘에 쏙 드는 그림 산다
부유층이나 소수의 수집가만 참여하는 곳으로 여겨져온 미술시장이 ‘만만’해지고 있다. 50만~1000만원 정도의 중저가 작품 시장이 커져서다. 재테크 목적보다 고급 예술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기려는 사람이 늘어난 결과다.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14 미술시장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3년 미술품 거래 규모는 3249억2700만원. 전년에 비해 26.2% 줄었다. 반면 거래된 작품 수는 2만5195점에서 2만6865점으로 6.6% 늘었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중저가 작품 거래가 많아지면서 전체 거래금액은 크게 줄었어도 거래량은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술시장이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미술 향유층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50만~200만원…부담 없이 인테리어 소품 쇼핑하듯 맘에 쏙 드는 그림 산다
화랑·경매회사·아트페어(미술장터)들도 중저가 작품으로 새로운 소비자층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한국화랑협회가 다음달 3월까지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여는 ‘봄 미술 쇼핑’전이 그런 사례다. 전시회에는 10호 이하의 작은 작품이나 작가의 감수 아래 원화를 여러 장으로 제작해 고유번호를 붙인 에디션 작품을 여럿 내놨다. 대부분 100만~200만원대다. 전시 작품 중 가장 싼 이두원의 ‘빙하계곡 얼음낚시’(80만원)는 개관 당일 제일 먼저 팔렸다. 전시 담당자 한미경 씨는 “에디션 작품을 비롯해 300만원 이하 작품에 대한 문의가 고가 작품에 비해 다섯 배 이상 많다”고 말했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지난 15일 연 중저가 위주 온라인 경매인 ‘제5회 eBID NOW’에서는 500만원 이하의 미술품과 상품권이 전체 낙찰 품목의 75%를 차지했다.

예술품을 집안의 소품처럼 편하게 찾는 이도 늘고 있다. 서울 누상동의 화랑 아티온은 최연서·임정아 등 20~30대 신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다. 김민진 아티온 대표는 “유행이나 작가를 따지기보다 집에 걸기 위해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가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오는 9월에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어포더블(affordable) 아트페어 서울’이 열린다. ‘어포더블 아트페어’는 영국 런던 등 세계 13개 도시에서 대중적인 중저가 미술 시장을 키워온 그림 장터다. 가격 상한선이 있는 것이 특징. 1000만원이 넘는 그림은 전시장에 들여올 수 없다. 50만원부터 시작해 평균 200만원 정도의 작품이 걸릴 예정이다. 어포더블 아트페어 서울의 김율희 대표는 “어포더블 아트페어는 작품을 편하게 구경하고 부담 없는 가격에 살 수 있는 행사여서 미술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