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들로드' 만든 이 남자, 진짜 요리사로 돌아왔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잡아 주세요.”

지난 26일 서울 상수동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PD)의 경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스튜디오 안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여섯 대의 카메라가 자리를 잡고, 요리법이 적힌 화이트보드가 카메라 뒤쪽에 배치됐다. 이어 빨갛고 하얀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40대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아일랜드 식탁 앞에 섰다. 요리하는 PD로 유명한 이욱정 KBS PD다.

'누들로드' 만든 이 남자, 진짜 요리사로 돌아왔다
이 PD는 2009년 ‘누들로드’로 한국방송대상을 받았고, 지난해와 올해 ‘요리인류’ 8부작을 제작해 요리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다음달 6일부터 평일(월~금) 오전 10시40분부터 10분간 KBS 2TV에서 방송하는 요리 프로그램 ‘이욱정 PD의 요리인류 키친’에서 요리사로 나선다.

“오늘은 이탈리아 국민음식인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우선 소스를 만들어야 하는데요. 올리브와 일종의 멸치라 할 수 있는 안초비, 그리고 마늘을 빼놓을 수 없죠. 마지막으로 올리브유를 넣어 한꺼번에 갈아야 합니다.”

치아바타 샌드위치는 치아바타 빵을 반으로 가르고, 준비한 소스를 바른 뒤 생모차렐라 치즈와 물기 뺀 토마토, 화분에서 갓 따낸 바질을 올려 만든다. 적당히 달궈진 주물 팬에 빵을 올린 뒤 솥뚜껑으로 꾹 눌러 구우면 완성이다. 바삭한 치아바타 빵과 풍부한 치즈의 맛을 올리브유가 비단처럼 감싼다. 이탈리아 시골마을에서 지중해 바람을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요리하는 중간중간 이 PD가 풀어놓는 이야기까지 듣다 보면 정말 이탈리아 현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게 바로 이 프로그램의 지향점이다. 단순히 요리 맛을 제대로 내는 법만 일러주는 게 아니라 교양과 인문학적 지식이 요리와 어우러지는 신개념의 요리 프로그램을 추구한다.

“유럽 여행 도중 한국 음식이 생각난다면 안초비에 서양 고춧가루와 밥을 비벼 먹어보세요.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세계 어디를 돌아다녀 봐도 맛을 좀 안다는 민족치고 마늘을 안 쓰는 사람들이 없어요.” “여행도 떠나기 직전이 제일 흥분되듯, 요리도 완성되기 직전이 가장 설레는 순간입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엔 요리에 대한 열정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녹아 있다.

요리하는 PD 이욱정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바로 탕수육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난생처음 먹어본 탕수육. 바삭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돼지고기, 새콤달콤하면서도 묵직한 소스에 소년은 전율을 느꼈다. 유년 시절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기억이다. 이후 자라면서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할 때면 으레 그 탕수육 맛이 생각났다. 이렇게 요리는 그의 운명이 됐다.

1994년 KBS에 입사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도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8년 12월 선보인 7부작 누들로드는 ‘서유기’의 배경인 중국 화과산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국수를 통해 세계 문명사를 조망한 새로운 개념의 다큐멘터리였다.

“국수가 무슨 다큐멘터리 소재가 되느냐”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누들로드는 한국방송대상과 다큐멘터리의 퓰리처상이라고 불리는 ‘피버디상’을 받으며 다큐멘터리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보통은 여기서 멈추지만 이 PD는 한 발 더 나아갔다. 누들로드 방송 직후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루로 유학을 떠났고, ‘진짜 요리사’가 돼 돌아왔다. 최근 방송된 요리인류는 요리의 이면에 스며 있는 인류의 무한한 창의성을 조명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빵으로 권력을 행사하던 시대부터 현대 주요 국가 음식과 맛의 기원을 탐사하면서 ‘우리는 요리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입니다’라는 명제를 시청자에게 각인시켰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