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서울광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멍 때리기 대회’를 개최한 프로젝트 그룹 ‘전기호’. 《사회적 뇌》의 저자는 “인간의 뇌가 특정 과제에 몰두하지 않을 때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세계를 배우고 익힌다”고 주장한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서울광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멍 때리기 대회’를 개최한 프로젝트 그룹 ‘전기호’. 《사회적 뇌》의 저자는 “인간의 뇌가 특정 과제에 몰두하지 않을 때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세계를 배우고 익힌다”고 주장한다. 연합뉴스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 뇌도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뇌에선 수많은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신경과학계는 사람이 휴식을 취할 때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기본 상태 신경망’ 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른다.

[책마을] 우리가 '멍 때릴 때' 뇌는 사회적 관계를 생각한다
매튜 리버먼 UCLA 심리학·정신의학·생물행동과학과 교수는 《사회적 뇌》에서 “뇌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상태에서 사회적 세계에 대한 학습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잠시 휴식할 때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또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심리학에서 ‘사회인지’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사회인지에서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와 사실상 동일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쉬고 있을 때 자신과 타인, 사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왜 특별하다는 것일까. 저자는 “뇌가 인간이란 종의 성공을 위해 사회적 지능을 발전시키고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진화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종종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서 “단지 내가 좋아서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인간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이런 문화적 규범에 맞춰 쓸데없이 튀지 않기 위해 그렇게 얘기한다. 이처럼 인간은 스스로 이기적 존재로 여기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저자는 말한다.

뇌가 사회적 진화를 거듭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도록 지시한다는 사례는 자주 발견된다. 헌혈을 주제로 한 연구에서 설문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짜로 헌혈을 할 비율이 돈을 받고 할 때의 절반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과는 달랐다. 실험 결과 돈이란 보상이 주어졌을 때 헌혈한 비율은 73%, 공짜로 헌혈한 비율은 62%로 이익이라는 요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저자는 “우리가 남을 돕는 것은 이기적 행위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면 더 사회친화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타적 뇌 활동’을 위한 몇 가지 조언을 건넨다. 사회적 연결의 회복을 위해 친구와 차 한 잔을 마신다거나 이웃과 대화하는 것도 삶을 상당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집에서 보다 편하게 하고 싶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느슨한 연결도 좋다. 이런 원칙은 회사에도 적용된다. 조직 내에 사회적 연결이 잘 이뤄지면 직원들의 참여와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작업환경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사회심리적 동물이다. 주식시장의 변동은 경제 동향과 기업 실적 못지않게 사람들의 전반적인 기대심리와 공포에 크게 좌우된다. 저자는 “우리가 사회적 본성에 대해 많이 알게 될수록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사회와 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기회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서 인간의 뇌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뇌 휴식을 강조한 책《멍 때려라!》를 쓴 신동원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뇌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며 “당연히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지만 꼭 특정 분야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