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 디지털단지에서 공장설비업체 A사를 경영하는 김모씨는 얼마 전 회사 대표이사를 그동안 회사의 경리 업무를 맡아보던 아내로 바꿨다. 전기 부품업체 B사의 대표는 80대 할머니가 맡고 있다. 그는 B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사장 이모씨의 어머니다.

여성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꼼수를 쓰다 적발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여성기업 공공구매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다. 공공기관 물품 및 용역구매 시 총액의 5%, 공사발주액의 3%를 여성 기업에 할당하도록 규정한 여성기업 공공구매제가 ‘위장 여성기업’의 잇속을 챙기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모·딸 내세운 '위장 치마기업' 속출
○늘어나는 가짜 ‘치마사장’ 기업들

국내 740개 공공기관의 중소기업 제품 구매금액 114조9000억원 가운데 여성기업 할당액은 5조2600억원. 이 가운데 일부가 가짜 여성기업에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 따르면 공공구매 제도가 시행된 올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여성기업 확인서를 받은 업체는 6759곳이다. 이 가운데 반려가 134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71건)보다 111% 늘었다. 위장 여성기업으로 판단되는 ‘대표자의 업무미숙’이 722건으로 전체의 53.7%에 달했다.

여성기업 자격으로 공공기관 조달에 참여하려면 중소기업청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여경협으로부터 ‘여성기업 확인 판정’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 평가위원이 해당 사업장에 나가 실사한다. 중소기업에는 여성기업을 위한 가산점 0.5점이 공공기관 입찰의 당락을 결정할 만큼 크다. 대형 공사나 조달이 많은 연초에 이런 위장회사가 많이 적발된다.

○정작 여성기업은 몰라…제도 보완해야

신청 횟수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재수, 삼수를 할 정도로 끈질긴 위장업체가 늘었을 뿐 아니라 교묘한 눈속임으로 심사를 통과한 회사도 많아졌다. 현장 실사에 나갔던 한 평가위원은 “어떤 회사는 대학생 딸에게 회사에 대해 벼락치기 공부를 시켜 사장으로 내세웠다가 적발됐다”며 “여성기업 확인서를 받았으나 내부 직원이 ‘원래 대표는 남편’이라고 제보해 재조사 끝에 취소된 기업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작 많은 여성기업은 이 제도를 잘 모르거나 해당 사항이 없어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여경협 실태조사 결과 공공구매제에 대해 모르는 여성기업이 83.9%에 달했다. 공공기관 납품경험이 없는 여성기업도 90.7%였다. 여성기업의 62.5%가 숙박 음식업 도·소매업이기 때문에 공공구매에 적합한 여성기업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컴퓨터 제조업체 컴트리의 이숙영 사장은 “공공구매제를 이행하기 위해 여성이 경영하는 슈퍼마켓 같은 데서 구매하는 것으로 때우는 공공기관도 많다”고 꼬집었다. 정부도 ‘위장 치마사장’ 문제를 파악하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보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숙 여경협 부회장은 “위장 여성기업에 벌금을 물리고 재신청을 금지하는 등 제도 개선을 위해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