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면제된 國卒 학력…'공부할 시간' 깨달음 얻었죠"
“젊었을 때 목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뀝니다. 세운 목표는 어떻게든 이루려고 노력했어요.”

오는 6일 한양대에서 열리는 ‘전국검정고시 총동문회 2014 송년의 밤’에서 ‘자랑스러운 검정고시인’ 상을 받는 임병규 국회 입법차장(사진)의 말이다. 입법차장(차관급)은 국회 사무총장과 함께 국회 운영을 책임지는 자리다. 박형준 사무총장이 오기 전 6개월 동안 그는 공석이던 사무총장 대행까지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임 차장은 가난을 딛고 일어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경기도와 충청도가 맞닿은 안성 차령산맥 산골에서 4남1녀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도 못 갔다. “국민학교 은사님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갈 수 있었는데 아버지가 만류하셨어요. 형님 두 분은 일찍 서울로 떠났고 ….” 집안 생계가 그에게 달려 있어 농사일, 벌목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다 17세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거울, 나일론 공장 등을 전전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그만큼 힘에 부쳐 처지를 비관하고 주변을 원망했다. 폭음을 반복하고 허튼짓도 많이 했다. 전환점이 된 것은 1976년 때 받은 징집검사다. 국졸 학력 때문에 군 문제가 저절로 해결됐고 ‘남들보다 시간을 벌었으니 못했던 공부를 해 보자’는 생각에 책을 들었다.

공장장 등 회사 간부에게 밤엔 학원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월급이 삭감되는 환경에서 코피를 쏟아가며 주경야독 끝에 2년 만에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공부,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에 대입을 준비했고 1979년 등록금 부담이 없던 서울시립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이듬해 어지러운 시국에 휴교가 반복되자 ‘큰일을 해 보자’는 생각에 고시 준비를 결심했다. 친누나의 가게와 서울 상봉동 작은 독서실 등에서 쪽잠을 자며 공부했다. 행정고시 1차 시험을 통과한 여세를 몰아 2차 시험까지 봤지만 떨어졌다. 당초 예정 인원이 250여명이었는데 100명 정도가 군 출신 ‘유신사무관’으로 채워지는 바람에 고배를 마셨다. 임 차장은 입법고시(재경직)로 방향을 틀었고 6회 시험에 합격, 1983년 2월 국회사무처 의사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기획예산담당관, 총무과장, 관리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국토해양위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뒤 지난해 1월부터 입법차장을 맡고 있다. 검정고시 총동문회는 그에게 ‘타고난 성실성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국회직원의 꽃인 입법차장에 올라 전국 동문에게 더 없는 귀감이 됐다’고 헌정했다.

그는 산하 법제실에 의원입법 남발을 막을 방법을 연구하는 ‘위원회심사과정 효율화방안 마련 태스크포스(TF)’를 두고 입법만능주의 통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그는 의원입법이 늘어나는 것은 절대 좋은 현상이 아니며 부작용이 많다고 우려했다. 또 “지난 18대 국회 의원입법 건수는 1만여건으로 16대보다 네 배 증가한 데 이어 이번 국회(19대)에선 2만여건에 달할 전망”이라며 “법이 정치(精緻)하게 심의되지 않고 질 낮은 법이 양산되면 결국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