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東獨에 이식된 高비용·高복지의 역설
지난 9일로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됐다. 세상 사람들은 ‘자유의 승리’에 열광하던 그날의 환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동서독 주민들은 동독이 노예와 빈곤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와 번영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4반세기가 지난 지금 동독지역 주민의 72.8%가 ‘사회주의는 좋은 이념이라고 믿는다’는 소식이 들리니 말이다. 그토록 자신들을 괴롭히던 사회주의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참으로 듣기 민망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통일 독일은 물리적인 경계선이 소멸했지만 이념적으로는 여전히 깊숙이 분단돼 있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왜 자유를 갈구하던 동독지역 주민의 정신이 시장에 적대적 태도로 돌아섰는지의 문제다. 통일 이후 소득은 늘지 않고 일자리도 많지 않아 삶이 불안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지만 동독지역의 1인당 소득은 서독지역의 67% 선인 데다 더 이상 늘어날 전망도 없다. 실업률 또한 서독지역(6%)보다 2배나 높으니 동독지역 주민들이 삶에 불안해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걸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게 타당한가.

동독지역 경제가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발전이 느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독일 정부의 잘못된 반(反)시장 정책 탓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우선 동독지역 노동자의 서독 이주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동·서독 마르크의 1 대 1 교환 정책은 반시장적인 잘못된 것이었다. 그런 정책은 동독지역의 생산성을 훨씬 웃도는 임금 인상을 초래했다. 서독의 집단적 임금협상제도를 동독지역에 확대 적용한 것도 동독지역 근로자의 임금 상승을 부추겼다. 그런 임금 정책으로 신규 채용은 고사하고 기업 투자도 위축됐다. 기업 도산도 속출했다.

이렇게 쓰러지는 기업을 살리기 위해 독일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대량 실업은 필연적이었다. 이는 인적 자원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삶의 기회를 빼앗긴 개인에게도 치명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독일 정부는 계약법, 재산권법, 독립적인 사법부, 안정적인 통화 등 서독의 법제도를 동독지역에 확대 적용했다. 이는 아주 잘한 일이다. 문제는 서독에서 실행하던 국가 주도의 사회보장제도, 사회보장 기여금, 관대한 실업수당 등 다양한 복지제도와 이를 위한 높은 세율의 조세제도를 고스란히 동독지역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고(高)비용, 고복지의 이른바 ‘선진국형’ 독일 모형을 동독지역처럼 후진 경제에 적용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선적인 복지비용 부담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동독 기업들이다.

복지 정책으로 늘어난 것은 동독지역의 1인당 소비지출인데 이는 서독의 83% 선이었다. 그러나 1인당 소득은 서독의 67% 선에 불과했다. 그 격차는 서독에서 흘러들어가는 이전지출로 충당됐다. 독일 정부가 매년 동독지역에 투입하는 1000억달러 가운데 상당 부분이 그런 지출로 사용됐다.

이쯤에서만 봐도 동독지역은 서독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경제가 된 듯하다. 그런 보조금 정책이 효과가 좋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동독지역 주민들을 복지 의존적으로 만들고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도 그런 보조금 정책이다. 마케팅과 기술개발을 소홀히 하고, 기업가 정신도 활발하지 못했다. 동독지역 경제를 일으킬 선도적 창업은 고사하고 전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도 없었다. 기업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에만 쏠렸다. 체제 전환을 위한 이런 잘못된 반시장적 정책 탓에 동독지역 경제가 스스로 성장할 역동적 힘을 갖추지 못하고 반자본주의 정서만 키웠을 뿐이다. 체제 전환 정책도 친(親)시장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게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이 장차 남북 통일을 기대하는 한국 사회에 주는 값진 교훈이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