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 갇힌 국가 R&D] 2만3000건 잠자는 '무늬만 특허 강국'…기술무역수지 OECD 꼴찌
정부 R&D 과제 성공 여부, 논문 등 양적 지표로만 평가
시장 모르는 관료가 예산 배분…"과제 선정때 기업 참여시켜야"
#2. 서울 한 대학의 조교수인 B씨. 그가 연구하는 분야는 이차전지 소재다. 박사후과정 때 썼던 논문을 개량한 연구여서 시작단계인데도 어떤 결과물을 낼지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연구에 실패하면 다른 정부 과제를 따기 어렵다 보니 성공할 수 있는 주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개발(R&D)을 진행하는 현장의 모습이다. 사업화 성과가 날 만한 연구에 예산이 흘러가지 못하고 의미 있는 도전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게 문제다. 당연히 결과물도 신통치 않다.
○미국 절반도 안되는 생산성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25개 출연연구원이 작년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고 받은 수입은 843억원이다. 같은 기간 투입된 연구비는 2조1465억원. 투입 대비 성과를 보여주는 연구생산성은 3.9%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뒷걸음질쳤다. 2012년에는 908억원을 벌어 4.5%의 생산성을 보였다.
2012년 기준 대학 등을 포함한 한국 전체 공공연구기관의 연구생산성은 1.49%로 더 낮아진다. 3.9%인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경상기술료 격차는 더 크다. 경상기술료는 기술이전 후 사업화됐을 때 매출액 기준으로 받는 돈이다. 한국의 경상기술료는 미국 10분의 1에 불과하다.
○기술무역적자 OECD 최대
한 출연연 중소기업지원팀 소속의 C연구원. 한 달에도 몇 차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기술이전 설명회에 참가하고 있지만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해 고민이다. 그는 “사업화 단계를 100%라고 볼 때 연구원의 특허와 기술 상당수는 솔직히 50~60%까지만 개발된 상태”라며 “가져가도 상당한 추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리스크를 떠안으려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창조경제를 강조하면서 정부가 R&D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게 기술사업화다. 연구성과를 기술이전, 창업 등을 통해 사업으로 연결하라는 주문이다. 25개 출연연 공동으로 중소기업지원통합센터(1379콜센터)를 설립하고 출연연마다 중기 지원, 기술사업화 전담조직도 신설했다. 하지만 소규모 계약만 이뤄질 뿐 굵직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25개 출연연이 2013년 기준 전체 보유한 특허는 무려 3만4888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활용된 특허는 1만1706건. 활용률이 33.5%에 불과하다. 5년이 지나 무용지물이 된 휴면 특허도 2011년 4533건에서 작년 5622건으로 24% 증가했다. R&D 과제의 성패 여부를 논문, 특허 등 양적 지표로만 평가하면서 초래된 결과다.
2012년 한국은 기술무역수지에서 57억400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적자 규모다. 산업에 필요한 핵심, 원천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기업들이 해외에서 기술을 수입해오기 때문이다.
○정권 따라 연구주제 바뀌어
정부가 바뀔 때마다 R&D 주요 테마가 바뀌는 것도 문제다. 지난 정부 때는 ‘녹색’, 이번 정부에서는 ‘창조경제’ 등이 주요 지원 대상이다. 3D프린터, 그래핀, 나노, 유전체분석, 빅데이터 등 뜨는 연구주제에는 20여개 부처가 모두 경쟁적으로 예산을 지원한다. 한 출연연의 책임연구원은 “유행에 따라 연구 지원 대상이 자주 바뀌다 보니 연구 현장에선 10년 이상 한우물을 판 고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은 “시장을 잘 모르는 공무원과 연구자들이 정부 R&D 사업의 기획과 집행을 주도하면서 기업에 쓸모없는 연구결과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정부 과제를 선정할 때 기업 참여를 늘리고 기업 수탁연구, 산·학 연구 실적 등을 연계하는 등 시스템 전반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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