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가 연구실에서 바이러스 연구에 사용되는 환자의 체액 샘플을 살펴보고 있다. KAIST 제공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가 연구실에서 바이러스 연구에 사용되는 환자의 체액 샘플을 살펴보고 있다. KAIST 제공
많은 사람이 한국 의학계에서 기초 연구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의사들이 학술 연구보다 환자 치료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자 등 과학자들은 임상 경험이 부족하다. 국내 기초의학 연구 발전이 더딘 이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AIST는 2005년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하고 의대에서 학부 과정을 마친 의사들이 의과학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신의철 KAIST 교수는 의과학대학원이 설립된 후 안착하기까지 가장 크게 이바지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간염 발병 원리 밝힌 의과학자

신 교수는 의사인 동시에 미생물학자다. 1996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지만 임상 의사가 되지 않고 같은 대학에서 미생물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 때문에 돈을 많이 버는 의사의 길을 거부하고 연구직을 택했다. 박사가 된 후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 국립보건원으로 갔다. C형 간염은 B형 다음으로 흔한 간염이지만 정작 바이러스가 어떤 방법으로 간을 손상시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는 한 마리에 2억~3억원에 달하는 침팬지 연구가 가능했다. C형 간염은 사람과 침팬지만 감염되기 때문에 쥐를 이용한 연구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2008년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로 왔다. 제자들과 함께 C형 간염 연구를 계속했고 2012년 C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 손상을 일으키는 기전을 밝혔다. 면역세포는 ‘깃발 단백질’을 통해 감염세포를 판별하고 죽인다.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이 깃발 단백질을 숨겨 면역세포가 감염세포와 정상세포를 구별하지 못하게 해 무차별 공격을 유도한다. C형 간염에 걸리면 지속적인 간 손상이 이뤄지는 이유다. 이 논문은 2012년 세계적인 의학저널 ‘헤파톨로지’에 발표됐다.

○의사 네트워크 올라탄 과학자

신 교수의 간염 바이러스 연구는 A형 간염으로 이어졌다. A형 간염은 급성 간염으로 날씨가 더운 여름철에 발병률이 높다. 당시까지만 해도 A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세포를 파괴하는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발단은 미국에서 돌아온 뒤 의대 동문을 중심으로 의사 네트워크를 만들던 그에게 한 의사가 A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를 제안하면서다. 2008~2011년 한국에는 A형 간염이 유행하고 있었다.

신 교수는 A형 간염 연구에 나섰다. 간염 연구를 위해서는 환자 샘플이 필요한데 기초과학 연구실에서 환자 샘플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 교수는 의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환자들의 임상 샘플을 확보했다. 임상 샘플 연구를 거듭한 끝에 A형 간염 바이러스가 면역체계를 교란해 환자의 면역세포가 간세포를 파괴하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신 교수는 “임상의사와 과학자 간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한다면 의학 연구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며 “A형 간염 연구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왓슨 회고록’으로 시작된 꿈

신 교수가 과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고2 때 아버지가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의 회고록을 사다 주면서다. 그는 회고록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왓슨의 사진에 매료돼 생명과학자의 꿈을 갖게 됐다. 문제는 아버지가 생명과학대에 진학하려던 그를 만류하면서 발생했다. 아버지는 “의대에 가도 생명과학 연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를 믿고 의대에 진학한 그는 현실적으로 연구에 매진할 수 없는 환경에 낙담했다. 결국 그는 임상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과학자의 길을 택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