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철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재정·시설·취업 등 工大 '제2 전성기'…인재 몰렸으면"
국내 조선공학의 선구자 김효철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사진)가 ‘교양으로 읽는 조선공학’(해리 벤포드 저)을 번역해 내놨다.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 등 최근 몇 년간 배와 관련한 사고가 잇따르면서 배에 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으나 대중에게 전반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책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퇴임 후에도 매일 출근해 번역 등 작업에 여념이 없는 김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서울대 조선학과는 해방 직후인 1946년 경성제국대, 광산전문대 등에 다니던 재학생을 모아 조선항공공학과로 설립됐다. “1회 입학생들이 6·25전쟁 직전인 1950년 5월 졸업했습니다. 그동안 없던 학문이라 학생들의 관심이 컸어요. 기존 학력을 포기하고 신입생으로 입학하는 경우도 많았고. 새 지식에 대한 의지가 불타는 사람들이 일찍부터 진입해서 국내 조선산업이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어요.”

1959년 입학해서 보니 과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교재가 변변치 않아 늘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외국 대학 책을 번역해 공부해야 했다. 김 교수는 석사 졸업 후에 당시 연탄으로 잘나가던 삼표산업에서 2년간 일하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2006년 퇴임 전까지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특히 1970년대 일본 차관을 들여와 캠퍼스에 선박저항성능연구실을 세운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다. 길이 110m, 폭 8m, 깊이 3.5m 수조를 보유한 이 시설은 서울대 내 단일실험실로는 최대 규모다. 컨테이너선 등 모든 종류의 모형 선박 설계와 진수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김 교수는 일본으로부터 전량 수입하던 경정용 배를 국산화한 인물이다. 배의 진동을 막아주는 ‘횡(橫)동요 억제장치’와 배가 운항 중 물로부터 받는 저항력을 재는 계측센서 원천기술도 개발했다.

김 교수는 예전 열악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공대는 지금이 제2의 전성기로 많은 인재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회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먼저 재정적 지원을 들었다. 모든 공대생이 재학기간 중 총 납부 등록금의 절반가량을 이런저런 장학금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국가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석·박사 학위생에게는 혜택이 더 많다. 그는 “정원(46명)이 적은 조선해양공학과 학생들은 공부를 마치면 현대중공업 등 굴지의 국내 기업을 골라 가는 편”이라며 “마곡에 R&D센터를 짓고 있는 대우조선해양만 해도 작년에 10명이 몰려갔다”고 말했다. 전자공학, 기계공학 학부생 중 조선공학에 대해 잘 모르고 대학원에 지원해 석·박사과정을 공부하는 학생도 많다. 번역서를 낸 것은 이들 학생도 염두에 둔 것이다.

김 교수는 내년 학과 70회 입학생이 생기는 것을 기념해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동창회 70년사’를 쓰고 있다. 우리 기술을 외국에 알리기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 지원을 받아 대표로 저술한 ‘조선기술:배 만들기의 모든 것’ 영문 번역작업도 하고 있다. 그는 방문객들에게 코냑과 약재가 들어간 커피를 ‘꼰약’이라며 대접하는 애주가다. 김 교수는 “미래를 위한 산업구조 혁신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를 해낼 수 있는 인력은 결국 공대생”이라며 “후학들의 공부를 위해 번역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