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국내 IT 역차별이라고?
국회에서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주최로 ‘구글 때리기’ 세미나가 열렸다. 주제부터가 ‘구글 독점, 국내 역차별’이다. 한마디로 ‘구글 규제법’을 만들라는 것이다. 규제 무풍지대에 있는 구글에 비해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고 있고, 이것이 구글의 모바일 독점을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구글도 규제를 받게 하라는 얘기다. 굳이 ‘규제 형평성’을 문제 삼겠다면 국내 정보기술(IT)도 똑같이 규제 무풍지대로 해 달라고 할 것이지 이건 또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다 함께 규제 나락으로 떨어져 너 죽고 나 죽자는 건지.

문제는 ‘갈라파고스적 규제’

정말 규제 역차별이 있다면 국내 IT는 오히려 구글에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 땅에 얼마나 불합리한 ‘갈라파고스적 규제’가 널렸는지가 구글 덕에 밝혀진 것이니 말이다. 문제를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규제이지 구글이 아니다.

더구나 구글은 규제 무풍지대라지만 정작 구글이 이에 수긍할지도 의문이다. 구글 글라스를 국내에 들여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도 서비스를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국내에서만 요구하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 등록 규제, 전기통신사업법·전자상거래법 상 차별조항 등 그들도 입을 열면 불만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국내 IT는 이런 규제로 보호받고 있다는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특정 외국 기업을 때려잡자고 하는 배경에는 꼭 이를 꼬드기는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 對 외국 기업’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빼고 나면 손에 잡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당장 구글이 지난해 구글플레이에서 1조1941억원의 매출을 올린 게 못마땅하다는 식의 주장만 해도 그렇다. 여기서 과세 논란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니 일단 제쳐 두자. 구글플레이 매출에 불만인 이들은 이게 다 국내에서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점유율이 89.2%라서 그렇단다. 아니 구글이 언제 안드로이드를 쓰라고 손목을 비틀기라도 했다는 건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를 놓고 누굴 탓하는지 모르겠다.

저급한 애국주의, 혁신 망쳐

공정거래위원회는 뭐하냐는 얘기도 그렇다. 네이버와 카카오에 대해서는 불공정행위를 엄격하게 제재하면서 구글 검색앱 등의 선탑재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이다. 공정위가 국내 기업은 잘못해도 눈감아주고 외국 기업은 무조건 때려잡으라고 있다는 건지. 유치하기 짝이 없다.

구글이 자사 앱마켓인 구글플레이에 국내 앱마켓을 등록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주장은 또 무슨 억지인지. 입장을 바꿔 자신들이 구글이면 그렇게 하겠나. 내가 공들여 만든 앱마켓 안에 남의 앱마켓을 공짜로 들일 사업자는 어디에도 없다. 무슨 자선사업자라면 몰라도. 심지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구글 캠퍼스 계획 발표장을 찾은 것도 불만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무슨 어린아이 투정처럼 들린다.

구글을 두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안방에서 실컷 독점을 누리며 호가호위하던 이들이 모바일에서 밀리자 구글 독점 운운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민망하다는 것이다. 구글을 두들겨 패면 없던 경쟁력이 갑자기 생기기라도 한다는 건지. 저급한 애국주의는 국내 IT를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차라리 구글처럼 혁신을 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하면 그나마 솔직하다는 평이라도 듣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