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좋은 불평등'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삶을 개선시킨다…피케티가 왜 불평등을 무조건 나쁘게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위대한 탈출’과 ‘21세기 자본’.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다룬 두 권의 책이 최근 동시에 한국에서 번역·출간됐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쓴 ‘21세기 자본’은 자본주의 발달이 불평등을 확대시킨다는 결론을 내린다. 반면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가 낸 ‘위대한 탈출’은 불평등이 성장의 부산물이며, 삶을 개선하는 과정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실에서 만난 디턴 교수는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점에선 나와 피케티 교수가 같은 생각이지만 나는 불평등이 동기 부여가 된 경제 성장 덕분에 인간의 삶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디턴 교수의 ‘위대한 탈출’은 지난 3월 영문판이 출간된 ‘21세기 자본’보다 앞서 작년 9월에 미국에서 출간됐다.

▷빈곤과 불평등에 관한 연구가 유행입니다.

“유럽에서는 항상 불평등 문제가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미국은 최근 들어 불평등이 심화됐는데 문제 해결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죠. 약 100년 전의 미국도 비슷했습니다. 당시에도 극도의 빈부차가 사회적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관심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불평등이 사회 갈등을 부른 원인이라고 보십니까.

“폴 크루그먼 교수는 2000년대 초 쓴 책에서 1972년부터 30여년간 미국 중산층의 소득이 정체됐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죠.”

▷많은 사람이 피케티 교수와 당신의 책이 ‘불평등’에 관해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다른 것을 썼을 뿐입니다. 그는 ‘부(wealth)’에 대해서, 저는 ‘건강(health)’과 ‘소득(income)’에 대해 썼습니다. 그는 유럽의 문제를 강조했고, 저는 미국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불평등을 보는 관점이 다르지 않나요.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점에 관해선 저와 피케티 교수의 생각은 같습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불평등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죠.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삶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 간 소득과 기대수명의 격차도 줄었습니다. 최근 30년간 중국과 인도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결과입니다.”

▷이 같은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불평등이 성장의 유인책(인센티브)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합니다. 스스로 교육 기회를 찾게 하고 경제활동을 자극합니다. ‘좋은 불평등’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삶을 개선시키죠. 저는 피케티가 왜 불평등을 무조건 나쁘다고 보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경 인터뷰] '좋은 불평등'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삶을 개선시킨다…피케티가 왜 불평등을 무조건 나쁘게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성장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들립니다.

“불평등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불평등이라는 현상의 복잡함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지 불평등에 반대하거나 찬성할 뿐이죠. 불평등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현실을 개선하고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있을 당시 동료 중 한 명이 26세에 교수가 됐습니다. 질투가 났지만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2년 안에 따라잡았죠. 이런 게 좋은 불평등입니다.”

▷성장 위한 최적의 불평등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누가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 나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적합할까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최적의 불평등 정도가 ‘제로(0)’는 아닙니다. 불평등을 없앤다고 해서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양극화나 불평등의 부작용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가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불평등은 성장의 결과이면서 또한 성장과 진보를 이끌어 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부자가 될 수 없죠.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정치적 불평등 때문에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저서 ‘위대한 탈출’에서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성장을 위한 방법론은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성장은 미스터리와 같습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비법이 무엇인지는 각 나라와 상황에 따라 다르죠. 하지만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합니다. 북한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과도한 규제와 정부의 시장개입, 자유무역을 해치는 수입 제한 등이 성장에 마이너스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기업가정신’도 성장 조건 아닌가요.

“물론입니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빌 게이츠 모두 혁신과 경쟁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구글의 혁신과 창업정신을 좋아합니다. 그들이 커지고 돈이 많아졌다고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이게 바로 불평등의 좋은 측면입니다.”

▷소득 불평등이 건강과 수명의 차별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반대 주장도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평균 기대수명의 비약적인 증가는 역설적으로 불평등이 빠른 속도로 증가할 때 이뤄졌습니다. 낮은 소득과 짧은 수명을 연결시키는 것은 근거가 약합니다.”

▷하지만 부자들이 더 오래 살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부자들의 수명이 더 긴 것은 최신 의학의 도움을 더 받을 수 있고, 건강하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극도의 빈곤이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빈곤이 수명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도 틀린 주장입니다. 부자들은 공적 건강보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보험료는 내고 있지 않습니까. ”

▷소득이 개인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일까요.

“경제가 성장하면서 더 많은 소득을 얻게 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됩니다. 소득은 삶의 개선과 행복에 중요한 요소죠. 한국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이 점에서 ‘이스털린의 역설’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은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1974년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성장보다 분배를 더 강조하는 분위기입니다.

“정말인가요? 한국인들은 더 이상 부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나요? 한국이 성장에 대한 욕구보다 분배의 목소리가 더 크다면 과거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성장이 없었다면 지금 어떤 상황이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은 아직도 더 성장해야 합니다.”

▷피케티 교수는 저서에서 부유세를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저는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에 찬성하지만 피케티 주장에 동의하진 않습니다. 피케티의 숫자(세율)를 보면 아주 높은 세금을 별로 많지 않은 소득에 부과합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저는 연금의 50%를 매년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디턴 교수는 빈곤측정 방식 개발…보건경제학 분야 최고 전문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69)는 미시와 보건경제학 분야의 석학이다. 프린스턴대에서 공공정책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우드로윌슨스쿨의 석좌 교수도 맡고 있다.

디턴 교수는 1945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출생했으며 1975년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엔 미국 계량경제학회가 2년마다 해당 분야에서 5년간 제출된 논문을 심사해 선정하는 프리시(Frisch) 메달의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됐다.

1980년 영국 브리스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당시 존 무엘바우어 옥스퍼드대 교수와 함께 소비자 행동을 연구할 때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수요측정 방식 AIDS(Almost Ideal Demand System) 모델을 고안해 주목을 받았다. 또 그가 개발한 빈곤측정 방식은 현재 널리 활용되고 있다. 2009년 미국경제학회(AEI) 회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프린스턴=이심기 특파원/유창재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