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가로 여전히 바쁘게 활동하는 이어령 씨가 서울 평창동 둘레길 옆 북한산에서 생명법칙의 원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문화비평가로 여전히 바쁘게 활동하는 이어령 씨가 서울 평창동 둘레길 옆 북한산에서 생명법칙의 원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국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꼽히는 이어령 씨(81). 서울 평창동 북한산 자락에 40년간 살고 있다. 산에는 자주 안 간다. 동네 사람들이 풀어 놓은 큰 개가 골목에서 갑자기 나와 놀란 뒤로 산책을 싫어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땅에 난 길(off road)을 걷지 않는 대신 구글과 같은 정보검색로(online road)를 뒤진다. 어릴 때부터 평생 발동해온 지적 호기심 때문이다. 지식탐험로(knowledge road)가 산책로인 셈이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또 자기 전에 하루에 두 번 1~2시간씩 뇌호흡을 통한 기명상을 한다. 최근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책을 내며 화두를 던진 그를 지난달 30일 오후 2시반부터 5시반까지 만났다. 기자가 자주 가는 평창동 둘레길 옆 북한산 기슭으로 안내했다. 둘레길 근처에 있는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대화를 나눴다. 이어령 씨 부부의 거처이자 전시관인 영인문학관도 구경했다. 그는 말을 한 번 시작하면 10분 넘게 청산유수처럼 풀어냈다.

▷북한산이 코앞인데 산에 자주 오나요.

평창동 둘레길
평창동 둘레길
“(숨이 찬 듯)오랜만에 오니 힘드네요. 동네 길을 집사람과 가끔 걸어봤죠. 요즘은 안 가요. 아줌마들이 풀어 놓은 큰 개가 어디서 나올지 몰라서요. 지척에 이렇게 멋진 코스가 있네요. 앞으로 와봐야겠어요.”

▷산이 멋있죠.

“소를 힘있게 그렸던 화가 이중섭은 바위가 울통불통 나온 한국의 산이야말로 골격이 있는 산이라고 했죠. 서양의 산은 나무가 많아 살이 쪄서 골격이 안 보인다고 하면서요. 6·25전쟁 직후 한국의 민둥산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거죠.”

▷평창동에는 언제부터 살았습니까.

“1970년대 땅을 세 필지 사서 집을 지었어요. 요즘이야 뭐 부촌이라고 하는데 그때는 ‘김신조 루트’라고 해서 땅값이 쌌어요. 집이 드물어서 전화, 전기, 수도도 안 들어왔죠. (한 집을 가리키며) 저 집이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해서 지은 집입니다.”

▷언덕까지 오르려면 힘들었겠네요.

“애들이 고생했지, 걸어 올라 다니느라고. 그때 저는 이미 문인 1호로 자가용을 운전기사를 두고 굴렸어요. 당시만 해도 자가용은 시기심을 샀지만 지금은 그런가요? 경제 수준이 높아질수록 달라지지요. 지금의 빈부격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뱀 대가리가 강을 건너면 꽁지도 건넌다’는 거죠. 일체가 되면 그들의 부(富)가 내 부이고, 네 가난이 내 가난이죠. 그런데 ‘넌 왜 머리고, 난 왜 꼬리냐’며 서로 싸우면 뱀이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며 강을 못 건너가죠.”

▷양극화 얘기인가요.

“그런 얘기는 아니고요. 근대화를 이끈 굴뚝경제인 산업자본주의와 지금의 금융자본주의는 다릅니다. 산업자본주의에서는 제조업이란 실물과 돈이 비슷했어요. 1968년부터 카지노자본주의라는 말이 생겨났죠. 이게 쉽게 말해 돈 놓고 돈 먹기예요. 원래 돈은 물건을 살 때처럼 교환가치로서 가치가 있는 건데, 카지노자본주의에선 돈 자체가 목적이 돼 버렸죠. 달러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해 노력과 상관없이 돈으로 돈을 사죠.

주식을 사더라도 생산자금으로 쓰이는 게 아닙니다. 생산과 상관없는 수십배의 돈이 허공에서 돌고 있어요. 그렇다고 종이돈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계수적으로만 왔다갔다 하죠. 금융공학으로 들어가면 전문가들도 몰라요. 컴퓨터만 알아요. 지금 밑지는지, 돈을 버는지, 언제 망하는지 모릅니다.”

▷컴퓨터가 문제입니까.

“1930년대 대공황은 투자·공급 과잉이 원인인데 정보가 부족해서 불황이 발생했죠. 불황 없는 자본주의를 정보자본주의라고 했어요. 냉전이 끝나자 군사정보가 금융정보로 넘어왔죠. 머리 좋은 NASA(미 항공우주국) 출신이 은행으로 다 갔어요. 금융공학이 역사상 없었던 컴퓨터로 전 세계의 돈 흐름을 잡으니까 일반 사람들은 ‘내 머리로, 내 노력으로 재산을 불린다’는 생각을 버렸죠. 카지노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돈이 혼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금융자본주의 종말론인가요.

“영국의 화학·물리학자인 소디는 열역학법칙이 적용되는 이 세상엔 영구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데, 돈만은 무한하다고 했죠. 화폐경제인 금융자본주의는 자연의 물리 질서에 안 맞아 그대로 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생명자본주의를 주창하나요.

“사회 환경학자나 심지어 동화작가들도 ‘경제문제가 삶의 문제인데 경제학자들이라고 해서 특별할 수 없다. 우리가 경제를 논하는 경제학자다’라고 말하면서 무너진 전통경제학을 대신해 생명 자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다른 경제학자도 많은데요.

“다른 사람들은 유학 가서 공부를 많이 해 남의 이론으로 남의 이념을 보고 있어요. 우리는 좌우 논쟁이 심해도 제 머리 좌, 제 머리 우가 없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좌, 우가 편을 갈라서 붙는 거지요. 진짜 우, 진짜 좌가 있다면 이렇게 싸우지 않아요. 서로 보완합니다.”

[정구학의 '사색의 길 따라'] 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지성 이어령
▷생명자본주의는 뭡니까.

“인간 중심의 생명은 과학이라는 보편성과 단백질 환원주의와는 다릅니다. 아인슈타인한테 가서 ‘내가 실연했는데 죽을까요? 어떻게 할까요?’ 하면 답이 나오나요. 과학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환경입니다. 어떻게 생명법칙이 과학법칙하고 같습니까. 과학은 어떻게는 설명이 되는데, 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모든 가치를 생명 가치 위에다 두는 겁니다. 이 우주에서 생명을 가진 혹성은 지구밖에 없어요. 지구에만 있는 생명의 법칙을 어떻게 전체 우주에 있는 보편적 과학 질서인 만유인력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구체적으로 설명을.

“뉴턴은 바보예요. 사과, 달, 우주의 별들이 떨어지는 엄청난 우주의 중력 법칙을 알았지만 작은 사과 씨앗이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올라가서 빨갛게 익는 생명의 법칙은 몰랐습니다. 올라갔으니까 떨어지지, 그냥 떨어지나요. 돌멩이나 책이 떨어진 게 아니잖아요. 생명 법칙과 물리 법칙을 함께 생각해야지 물리 법칙만 생각해서 되겠습니까.”

▷생명자본주의의 주인공은 사람인가요.

“아니죠. 사람이 주인공인 자본주의가 됐으니까 이 모양인 거죠. 인간만이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하지만 사람이 살려고 자연의 모든 걸 죽였죠. 예를 들면 우리가 나무를 살려두고 자본이 됐을 때는 생명자본주의예요. 번식하니까요. 남이섬 메타세쿼이아가 쫙쫙 올라오니까 관광객을 모으고, 돈이 됐죠. 나무를 잘라서 발전하는 것은 물질자본주의죠.”

▷더불어 사는 겁니까.

“자연에서 먹고 사는 데는 포식, 기생, 공생 세 가지가 있습니다. 지구에서 46억년간 모든 생물이 진화하면서 포식 중심이었으면 모두 죽었을 것이고, 만약 기생 중심이었으면 숙주가 죽으면 마찬가지로 다 죽었겠죠. 그래서 공생이 생명체의 기본이라는 겁니다. 남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남이 기쁘면 같이 기쁜 게 공감이죠. 애덤 스미스도 도덕감정 위에서 자본주의를 얘기했습니다.”

▷어떻게 공감을 느끼나요.

“예술밖에 없어요. 과학을 뛰어넘는 거죠.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을 때 생명감을 느끼는 겁니다. 미술, 문학도 좋습니다.”

▷의식주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죠.

“물론이죠. 어항 속에 갇힌 금붕어를 생명의 바다로 나가게 하자 이겁니다. 생명을 그냥 찾아가는 게 아니고, 생체기술로 찾아가야 합니다. 옛날에는 꿀집에서 물질인 꿀을 훔쳐왔는데 지금은 축구 골대의 육각형 골네트를 꿀집과 똑같은 육각형으로 만들잖아요. 사각형보다 전체 끈 길이가 짧은데도 강도가 세죠. 생체기술 지혜를 산업기술로 옮겨 공생하자는 겁니다.”

▷선생님의 통찰력은 어디서 오나요.

“어릴 때 천자문을 배우는데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하는데 ‘왜 하늘이 파란데 검다고 하나요?’라며 서당 선생님한테 질문했다가 혼났지요. (하하) 항상 이런 의문을 품었어요. 형제(5남2녀 중 막내)가 많아서 어렸을 때부터 대학생 형들의 대화에 끼었어요. 그러니까 조기 교육하지 말고, 제 머리로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절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입식 교육이 문제네요.

“교육을 가르치는(teaching) 게 아니고 배우는(learning) 쪽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학생들이 목 말랐을 때 물을 줘야지, 배 부를 때 주면 물고문이죠. (하하) 티칭에서 러닝으로 바꾼 뒤에는 선생과 학생이 함께 생각(thinking)하고 마지막으로 창조(creation)하는 단계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 향해 나아가는 중
지금은 문지방 위에 있는 神…아직 넘어가진 못해

딸 죽음뒤 신앙 흔들렸지만 다시 믿음의 길 걸어


[정구학의 '사색의 길 따라'] 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지성 이어령
이어령 씨는 2007년 실명 위기에 놓인 딸 이민아 목사가 시력을 회복하자 딸에게 약속한 대로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세간에서는 냉철한 지성인이 어떻게 종교를 받아들였는지가 화제가 됐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까지 낸 그였지만 세례 직후 스물다섯 살의 외손자가 죽고, 2012년에는 암과 투병하던 이 목사까지 숨지자 그의 신앙은 흔들렸다고 한다.

▷딸과 외손자가 죽고 나서 신앙의 변화는.

“손자를 잃었을 때만 해도 ‘예수님은 죄가 있어 돌아가셨나?’라고 생각했죠. 아닌 말로 어렸을 때 죽을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스물다섯 살까지 살았다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하지만 2년 전 딸의 죽음은 달랐어요. 딸이 눈을 뜨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서 제가 세례를 받았죠. 그런데 행복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가장 먼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하고 인간이 단절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죠. 대기업 회장이 일 열심히 하는 말단 사원을 일일이 모르잖아요. 하나님과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해 3개월 동안 기도도 안 하고, 성경도 안 봤죠.”

▷신을 많이 원망했나요.

“관심이 없어졌죠. 하지만 교회에 다시 나간 이유는 딸이 처절하게 죽었나? 그게 아니라는 거죠. 암에 걸린 사람 치고 우리 딸처럼 행복하게 산 경우는 이 지상에 없죠. (하하) 딸이 죽기 사흘 전에 남산 힐튼호텔 스위트룸에서 남편하고 묵으면서 ‘아빠 너무너무 행복해, 하루만 더 있어도 돼?’라고 물어서 ‘돈 땜에 뭘 눈치를 봐’라고 말했죠. 오히려 다른 의미에서 믿기 시작한 거죠.”

▷신을 믿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합니까.

“딸과의 약속을 통해서 할 수 없이 의무적으로 믿기 시작해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는 거죠. 저는 어디 가서 크리스천이라고 말도 못합니다. 믿는다는 말도 못하죠. 믿음을 향해 가고 있는 제 자신이 끝없이 탐구하는 신입니다. 문지방 위에 있는 신이지, 문지방을 넘은 것은 아직 아닙니다. 번지점프에서 떨어져야 하는데 세속적인 끈을 못 끊고 있는 겁니다. (하하)”

▷제사를 지내나요.

“지내죠. 다른 사람들은 절을 안 하는데 저는 합니다. 그걸 우상숭배라고 하는데 웃기는 얘기예요. 기독교 국가에서 국립묘지의 영령들에게 받들어 총을 하는데 그건 뭔가요. (하하) 자기 사랑하는 사람한테 절하는 게 왜 우상숭배입니까.”

▷국무총리 후보자였다가 사퇴한 문창극 장로도 같은 온누리교회 신도이죠.

“사상 검증은 어렵습니다. 일반 국민은 병역의무, 논문 표절과 같은 객관적인 건 판단할 수 있죠. 하지만 교회 강연이나 신문 칼럼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판단 영역이라 함부로 여론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사상 검증은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자칫 매카시즘과 역매카시즘처럼 불행을 부를 수 있죠.”

■ 이어령 선생은…

1933년 충남 온양 출생. 공주중 입학. 부여고 졸업.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 ‘우상의 파괴’라는 비평으로 문단에 데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을 저술. 문학평론가, 작가면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활동.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하고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냄. 현재 중앙일보 고문,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정구학 편집국 부국장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