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자 말고 오리 되라는 工大 평가
요즘 공과대학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정부도 공대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까지 구성, 거기에서 연구된 개혁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대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고, 산학협력을 통해 산업계의 새로운 기술개발에 기여하는 것이 기본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5년간 산학협력이 상대적으로 위축됨으로써 공대에서의 교육과 연구가 상당부분 왜곡돼 있었다. 이는 정량화 일변도의 평가제도 탓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정량화 평가는 강의는 강의평가 점수로, 연구활동은 논문 수, 연구비 수주액 등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평가방식은 BK21 프로그램을 비롯 정부가 실시하는 주요 대학재정지원 프로그램에서 당락을 결정할 때 핵심도구로 사용된다. 평가에서 논문 숫자를 중시하는 경향은 대학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 논문만한 게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논문 인용횟수도 논문의 질을 정량화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특히 평가 잣대가 논문 위주인 기초연구에 대한 정부연구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논문이 더 중요해졌다. 어쩔 수 없이 대학에서의 산학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어졌는데 산업체 연구는 응용 위주여서 인용빈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의 산학 연구는 적어도 숫자상으로는 선진국들과 비슷하다. 미국의 유수 대학도 산업체 연구비는 전체 연구비의 10% 남짓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산학협력이 훨씬 활발하게 보이는 것은 보상 체계가 잘 확립돼 있어 아이디어 공유에 적극적이고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산업 경쟁력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라고 볼 때 공학관련 분야 고급 두뇌의 70% 이상이 있는 대학에서 산학협력이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평가체제에서 공대 교수들에게 산학협력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라는 것은 연구비와 논문, 정년 보장과 재임용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순수과학 분야(자연대)는 논문, 응용과학분야(공대)는 산학협력을 평가지표로 단순화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공학과 자연과학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다.

우리 평가의 문제점은 지나친 세분화와 정량화에 있다. 모든 활동을 각각 점수화하고 합쳐서 우수성을 판가름하므로 골고루 조금씩 잘하는 게 최선이다. 한국의 평가 시스템은 오리를 만들어내는 제도라는 자조적 얘기도 있다. 오리는 걷기도 조금 하고 수영도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할 수는 있고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평가 시스템에서 사자는 오리에게 지게 돼 있다. 사자는 땅에서는 일등이지만 날 수 없고 헤엄도 못 치기 때문이다. 땅에서는 사자, 물에서는 상어, 하늘에서는 독수리와 같은 그 방면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생겨나도록 하려면 한국도 학술과 산학협력, 교육 등 다양한 경로를 만들어 교수로 하여금 자신에게 맞는 경로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교수 평가에서 논문의 수를 별로 따지지 않는다. 교수 업적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동료들에 의한 업적 평가다. 한국처럼 여러 지표를 늘어놓고 계량화해 합산하지 않는다. 우리는 동료에 의한 업적평가 같은 정성적 평가 시스템을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미뤄왔다. 그러나 사회가 선진화되려면 전문가 의견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에 의한 정성평가는 우리가 시도해보지 않은 유일한 평가 방법이다. 정성평가와 그 결과에 대한 신뢰는 공학분야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꼭 필요한, 한국이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이며, 지금의 평가시스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이우일 < 서울대 기계공학 교수·科實聯 상임대표 wilee@snu.ac.kr >